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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Dec 05. 2023

[왼손잡이] 니콜라이 레스코프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세상은 원자 알갱이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모든 사물이 서로 다른 알갱이들의 덩어리고,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다. 고체는 연결이 단단할 뿐, 원자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액체 및 기체와 다르지 않다. 태양에서 방출되는 열과 빛의 알갱이는 우리를 향해 질주하고, 사물과 우리 몸에 부딪혀 변형을 가한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입김도, 말을 하는 것도 어떤 이름 모를 알갱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만든 알갱이는 타인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타인의 알갱이와 결합하여 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를 덮고 있는 대기 역시 알갱이로 되어있다. 이쯤 되면 세상에 빈 곳은 없다. 이 지구는 거대한 알갱이 덩어리가 된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과 말들은 이 알갱이 덩어리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그럴 때마다 알갱이는 꿈틀대며 출렁인다. 우리는 숨 막힐 듯 빽빽한 알갱이 속을 뚫고 출근하는 것이고, 끊임없이 알갱이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과거 돌궐과 몽골은 지구 북반구의 북부를 이동했고, 여기저기 유사한 DNA 알갱이들을 뿌렸다. 우리와 비슷한 알갱이 구조를 가진 우리의 조상들은 북구의 동토를 지나 드네프르 강가에 자리 잡은 듯하다. 그래서 그들의 알갱이 깊숙한 곳에서 우리는 우리와 닮은 恨을 보고(분장 예술가), 신에 대한 끈덕진 경배와 기억을 보고(봉인된 천사), 외골수의 순박한 인간 서사를(왼손잡이) 환기하는 것이다. [왼손잡이]에 실린 세편의 중단편을 통해 나는 매우 한국적인 것을 읽었는데, 그것이 가장 러시아적인 것이라고 비평가 미르스키는 말한다. [왼손잡이]를 읽는 순간, 시공을 넘어 팽창한 알갱이는 나의 심장 속 비슷한 모양의 알갱이와 만나고, 1800년대 러시아 작가의 소설에서 보일 듯 말듯한 이어도의 이청준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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