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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 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by YT

책의 존재를 알고부터(아마 고등학생일 때인 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게 부채로 남았다. 꼭 한번 읽어야 하는 책으로, 책을 고를 때마다, 항상 구입을 고려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항상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너무 오래된 책이라는 것이다. 이제야 큰 결심을 하고, 읽을 기회를 만들었다. 마음의 빚을 기쁜 마음으로 갚을 수 있었다.

중2병을 소재로 하는 책,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남궁원/ 김진아 주연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을 생각나게 하는 책, 최근에는 [완득이]와 [스파링]을 생각나게 하는 책. 하지만 [호밀 밭의 파수꾼]은 내게 약간의 울림도 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왜 이 책이 나에게 부담감을 줄 정도로 유명한가?’. 세계 문학 전집에 당당히 끼어있고, 어느 대학의 꼭 읽어야 할 도서로, 모든 미디어의 권장도서로, 유명인사의 추천도서로 남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나름의 분석은 이렇다. 이 책은 1951년도에 발표된 작품이다. 즉 당시에는 중2병 같은 청소년의 고민과 반항이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때이므로 소재 측면에서 다소 독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을 서서히 가져가면서 미국 출신 작가(그것도 유대인)의 미국적인(뉴욕 배경, 미국 상류층 백인) 작품이기 때문에 매체에 띄울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J.D. 샐린저의 은둔과 연결된 작가에 대한 신비주의도 한 목 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이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큰 우리나라에서 장기간 동안 세계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래도 이 소설은 세계 명작의 틈에 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특히 중2병의 해소로 보이는 것이 동심에 대한 감정 - 즉 피비로부터의 공감 –이라는 측면이 그러하다. 피비는 동심이 축약된 천사로 보인다. 다분히 기독교 적이고, 부르주아 적이다. 1951년 당시에는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턱도 없는 주제 의식인 것이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Coming through the rye’라는 영화를 봤다. [호밀 밭의 파수꾼]에 감명받아, 그것을 희곡으로 바꾸고 싶은 주인공이 샐린저를 찾아가 허가를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의 여정과 삶은 [호밀 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의 삶과 일치한다. 즉 [호밀 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소재로 [호밀 밭의 파수꾼]의 내용을 연기하는 것이다. 기획은 독특했지만, 소설 자체가 공감이 없기에 차라리 우리의 완득이를 보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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