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268페이지)
구도소설 같은 인상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인의 삶을 연구하고, 생각과 행동을 추론하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이 소설 같은 다큐의 모습이다. 논픽션이지만 픽션의 서술 방식을 취하고, 역사적 인물의 평전 같지만 그를 최고의 빌런으로 반전시켜 버리는 극적 결말도 있다. 분류학이나 분기학 같은 생물학을 다루는 듯하지만 행동심리학적 요소가 더욱 짙게 드러나고, 학문의 위험성과 범주(명명)의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에서(위의 인용) 우리는 철학적 지평으로 향하는 그녀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것들의 얽히고설킴, 이게 바로 현실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그녀의 조사, 분석 그리고 추론은 쫀쫀하게 이어지며 다양한 범주의 틀을 넘나 든다.
완독 후 표지를 유심히 보았을 때의 혼란 – 제목과 표지 디자인은 책 쇼핑의 미끼로 사용된 듯하다 – 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성공비결은 이야기의 쫀쫀함에 있다. 작가의 고민이 해결되는 듯하다가도 더욱 앞으로 나아가는 탄탄한 구성이 매력적이다. 열정은 어쩔 수 없는 자기기만을 품고, 자기기만은 폭력성으로 성장하고, 생각의 중심에 ‘계층(인종, 동물)의 사다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만든다. 종교와 같은 확고한 신념이 된 계층의 사다리는 개인의 절박함, 열정 그리고 자기기만과 결합하여 독선이 되고 공동체에 폭력의 그림자들 드리운다. 이런 빌런의 성장에 대해 작가는 오류(혼란)에 대한 겸손과 작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우리 자신이 만든 범주에 대한 한계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책의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타노스 같은 최고의 빌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가해지는 카운터 펀치이면서, 범주의 오류(직관의 오류)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외침이다.
독서 내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개념이 하나 있다. ‘잘못 뿌려진 씨’ – 과거에 뿌려진 씨는 그 영향이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로 이어진다. 우생학이란 씨앗은 이미 오래전 폐기되어 화석이 되어버린 듯하지만, 여전히 그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 삶에 깊숙이 닿아있다. 의사들은 모든 병의 뿌리를 유전으로 설명하려들고, 더욱 정확한 게놈지도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필연적으로 조던의 계층 사다리 개념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생학이란 말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는 다시 창궐하고, 당시의 조던처럼 전 세계적으로 극우파는 이를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다. 잘못 뿌려진 씨앗의 대가는 참혹할 수 있다. 현재는 어쩌면 과거에 짓눌려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