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설 익었다. 남은 온기로 뜸을 들이지 못한 채,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고 인물/구성과 의미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소설의 설익음은 그녀의 후작(後作)에서도 유지되는 그녀의 전형적인 ‘문체’ 때문이다. 현호정 작가의 담백한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대화, 빠른 이야기 전개는 단편에서는 풍성함의 아우라를 만들어내지만, 약간의 긴 호흡에는 어울리지 않고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그녀만의 건조한 문체는 거대한 서사(지구의 탄생, 천지창조 같은)를 담을 만큼 탄탄하고 풍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속되는 시간 속, 일상의 사건들을 다루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읽기에 들어선 순간, 배경은 사라지고 사건만 남는다. 주위는 줌아웃되고 인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독서 내내 시간을 따라 흐르는 이야기에 대한 감상은 보통 풍성한 주변의 시야와 동행하지만, 그녀의 독재자 같은 문체는 주변으로 눈을 돌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벌어지는 사건 속으로 수렴된다. 독서는 마치 간단한 배경만 가진 연극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희곡작업을 하게 된 것일까?) 문체는 강한 몰입을 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설이 길어질수록 너무 말라버려 감상의 풍성함을 잃게 만드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호정 작가의 문체를 사랑하고, 그녀의 주제의식에서 읽히는 지독하고 유쾌한 긍정을 좋아한다. 나는 계속 그녀의 뒤를 쫓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으며 떠올랐던 나만의 연상과 의미를 나열하고 마무리하자 - 벨라를 안고 도시의 하늘을 나는 샤갈의 모습(수정이 이안을 안고 지옥에서 탈출하는 장면), 영상을 거꾸로 돌리는 것 같은 이미지(지옥의 나무가 열리고 닫히는 장면), 영화 ‘미니언즈’를 연상시키는 익살스러움(수정을 지옥의 신으로 추대하려는 소인 집단 장면), ‘질서’에 대한 강박, 전반적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리는 인물과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