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에서, 2018년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에서, 2020년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똑같은 광경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슈퍼마켓의 비닐 봉지가 도시의 도로를 날고 있었다. 그 이미지를 그려보고 싶어, 당시에 메모해 두었던 내용을 시적 서정으로 적어본다.
(2011년 서울) 비닐봉지가 영동대로를 날았다. 오래오래, 하늘 높이, 줄지어 선 빌딩만큼 높이, 그러다 영동대교에서 한강을 만나고 나서야 그 여행을 멈추고 착륙을 준비한다. 그것은 비닐 봉지가 한강에 표한 예의다.
詩作의 느낌으로 봉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봉지가 나는 모습에서 어떤 이미지를 막연히 떠올렸다. 의미를 챙기기보다 이미지가 주는 분위기에 집중했다. 조금은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풍긴다.
(2018년 제다) 7층 흡연실, 나의 머리 위에서 슈퍼마켓의 분홍 비닐 봉지가 떨어진다. 공기와 바람으로 빵빵해진 아랫도리를 위로 하다가도,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어 접히면서 다소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다시 공기를 마시고 위로 솟아 오르기도 하면서 천천히 제다 도심을 관통하는 마디나 로드를 향해 전진한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차를 덮칠 듯 말 듯, 달려오는 차를 발판 삼아 튀어 오르기도 하며, 곡예를 하며 마디나 로드를 난다. 자동차의 발에 치여 납작해졌다가, 다시 날아오르기도 하면서 점점 한적한 구석으로 밀려 날 것이다. 결국 한적한 구석에 끼여 바람이 불어도 그 자락만 펄럭이는 봉다리가 될 것이다.
(2020년 리야드) 리야드 우리 집 컴파운드에 둘러친 담벼락의 철조망에 걸려, 엄청난 애국심을 표현하는 듯, 찢어지게 펄럭이는 봉다리를 본다. 누군가의 손을 떠난 봉다리가 철조망의 날카로운 가시에 걸려, 아프게 울부짖다, 제 몸을 찢고 다시 날았다.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전화기를 들고 나갔더니 조금 전까지도 세차게 파닥이던 봉다리가 금새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