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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형이상학 정초]를 읽고

by YT

사실 몇 년 전에 책을 사서 읽었었는데, 최근 도덕/정의 문제에 대해 천착하면서 다시 읽었다. 칸트의 치밀한 논리 전개에 넋을 잃고, 고수의 묘함에 다시 한번 쪼그라드는 나를 느낀 읽기 체험이었다. 고수의 화려한 초식에 빈 곳을 노려 보았지만, 1절, 2절, 3절로 이어지는 빈틈이 없는 짠짠 한 전개에 매번 무릎을 꿇었을 뿐이다. 그래도 구질구질하게 두 가지만 적어 본다면….,

‘자기 법칙 수립적인 자율성은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되므로 인간성을 목적으로 대하라’라는 부분(24페이지) – 옮긴이의 해제이긴 하지만 – 뒤집으면 법칙 수립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서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인데, 조금 비약한 느낌이다. 자율성과 존엄성의 무게가 나에겐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존엄성에 맞추려면, 자율성에 대해 뭔가를 더 올려야 무게 중심이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게 무엇인지는 고민해 볼일이다.

그리고, 번역의 문제 인지는 모르겠으나, 칸트의 몇몇 용어 – 지시 명령, 의무, 행위하라 - 는 다소 위압적으로 들리며 이런 용어적인 뉘앙스 때문에 칸트를 ‘이성 종교’, 즉 이성을 종교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성교의 교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선에 대한 탐구를 통해 실제로 이성은 종교로서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사용 용어의 뉘앙스도 그런 인식에 힘을 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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