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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by YT

독서의 결정은 언제나 조그만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제목이 중요하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최근의 코로나 사태와 연계하여 선택하였고, 과연 전염병의 세상에서 사랑은 어떤 것인가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전염병 시대의 사랑은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소설을 다 읽은 후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것은 없다. 단순한 시대적 배경이고, 부분 부분 콜레라를 언급하고 묘사할 뿐 사랑의 형태, 정의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래도 굳이 연관을 찾는다면, 지독한 끈질김이 콜레라 시대 사랑의 특징이라고 말해 줄 만하다. 주인공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51년 9개월 4일간의 기다림은 우르비노 박사의 아버지 시대부터 시작하여, 소설의 끝부분에 까지 이르는 장수한 사람의 일생만큼 집요하며, 길게 늘어진 콜레라의 창궐 기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다소간 뒤틀려 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51년간 자신의 상상을 현실에 적용하며 살았다. 자신의 상상 속에서 괴로워하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기도 하며, 긴 세월을 페르미나 다사를 다시 만날 준비하며 버틴다. 스무 살 젊은이의 한 때의 사랑/욕망이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그 사랑의 발화점은 미약했고, 사랑을 키우는 과정 역시 너무나 빈약했다. 실제로 그들은 몇 번 만나지도 못했고,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무한 편지가 있을 뿐,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 가지도 못했고, 이야기도 별로 나누어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51년 동안 그 사랑을 간직하고 상상 속에서 키워왔다.

이러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주변성은 페르미나 다사로 하여금 그를 ‘그림자’, ‘유령’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페르미나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아버지에 의해 강제된 여행에서 돌아온 후, 들끓던 사랑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며, 그와 단절한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와는 달리 사랑의 감동이 아닌 환멸의 심연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런 망상을 키워왔는지 모르겠다고 놀란 마음으로 자문했다(책 1권 181 페이지)


지극히 현실적이다. 어느 한순간 자신 역시 상상 속에서 키워오던 사랑의 대상이 ‘이게 아닌데,’라는 현실과 감정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 이것이 아몬드 나무 냄새가 날 때마다 그녀를 떠올리는 끈기의 화신인 플로렌티노 아리사와는 다른 점이다. 하지만 그녀도 우르비노 박사가 죽고, 늙어가면서 자기 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껴가게 된다. 늙어서의 사랑은 확 타버리는 것이 아니라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마치 오래된 부부의 의리 같은 것으로 보인다. 플로렌티노 아리사! 당신의 끈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읽기를 마치고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왜 소설의 첫 부분에 후에 더 깊게 발전되지 않는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일까? 대가의 작품 치고는 너무 뜬금없는 도입부로 느껴졌다. 지금 내 생각엔 작가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오랜 기다림과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노화 공포증을 대비시키기 위해 제레미야의 자살을 소설의 시작으로 배치한 듯하다. 이를 대비 시킴으로 인해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집요함과 끈기다 더 빛나는 것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는 몇 번의 심리적인 轉變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페르미나 다사가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보며, 자신이 상상 속에서 사랑을 키웠고, 이제는 환멸로 바뀌는 경험이었고, 두 번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마침내 기다리던 우르비노 박사의 죽음을 대하면서, 기쁨의 감정을 느끼기에 앞서 불안감이 먼저 휩쓰는 장면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린 탓에 갑작스러운 상황의 발전에 대한 불안감이 먼저 그를 휩쓴 것이다. 세 번째는 (轉變은 아니다) 페르미나 다사의 플로렌티노 아리사에 대한 감정이 다시 회복되어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으로 다시 완전히 자신감을 찾고 회복된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선장의 언제까지 왕복 여행을 할 거냐는 질문에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라고 외치는 부분이다. 그림자 플로렌티노는 나이 70이 되어 그림자에서 벋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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