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세계로 훌쩍 넘어가는 법

독서와 친해지는 첫걸음

by 예온 YeOn

책은 단순히 종이와 활자로 이루어진 사물이 아니다. 책을 펼치고 한 문장이라도 읽는 순간, 내 주위로 다른 시공간이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저자의 관점과 상상력’으로 구현해 낸 또 하나의 세계이다. 말하자면,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9와 3/4 승강장’을 통해 들어가는 마법의 세계 같달까? 그러나 아무리 책을 들여다봐도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씨라는 사실밖에는 알 길이 없다 해도, 여전히 책의 바깥쪽을 서성거리는 기분이 들어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책이라는 세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사람들은 독서의 진입장벽이 꽤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책만 보면 졸음이 쏟아진다거나,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거나, 도무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서 책을 일상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에 치명적인 단점이 되지 않는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게 대단한 장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이라는 세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오든지, 한 발만 슬쩍 걸쳤든지, 아예 들어올 생각조차 안 하든지 간에 책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책이라는 세계로 선뜻 넘어가기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독서를 학습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학습지, 필독서, 교과서 등을 읽으며 학교에 다닌 우리는 ‘책’하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떠올리곤 한다. 독서가 지루하다는 편견은 아마 그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넣으려는 강박을 갖고 독서에 임하면, ‘9와 3/4 승강장’ 같은 비밀 통로는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억지로 독서를 시작할 생각이라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여가활동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책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꿔줄 것이라는 기대도 버리는 것이 좋다. 물론 책이 그만한 힘을 가진 것이 사실이나, 그런 변화는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서 조바심을 내면 오히려 독서에 방해가 된다.


책이라는 세계로 훌쩍 넘어가려면, 독서를 조금 가볍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 흥미가 생긴 분야나 장르부터, 활자 하나하나를 읽는 게 아니라 그냥 내용을 한번 쓱 본다는 느낌으로 살짝 훑어보기만 해도 괜찮다. 손안에 책 한 권이 있다는 감각만 느껴도 상관없다. 굳이 펼쳐보지 않아도 표지 제목만으로 내용을 상상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러다가 더 알아볼 마음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 손에는 책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의 열쇠가 주어진다.





마녀의 서랍_두 번째 칸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저 / 뜨인돌출판사)


나는 어쩌다가 ‘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책의 어떤 점에 끌려서 40여 년간 끊임없이 탐한 걸까? 혹시 책을 탐했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곤 했다.


이 책에는 훌륭한 작가이면서도 독자로서의 삶을 즐긴 헤르만 헤세가 책을 통해 사유한 결과물들이 집약되어 있다. 독서의 본질적 기능, 책을 대하는 태도, 다양한 작품에 대한 비평까지 헤세가 책이라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그저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서, 교양을 과시하기 위해 책을 읽을 바에는 더 생산적인 다른 일을 하라고 말하는 그는 책이 내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믿는 사람이다. 어쩌면 책이라는 세계와 인간이 만나 일으키는 일종의 스파크, 나는 그 짜릿함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통해 섬광을 본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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