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아

무거운 독서는 쉽게 지치니까

by 예온 YeOn

흥미가 가는 책이 있어서 기대와 설렘으로 구매했는데, 책을 펼친 지 30분 만에 덮어버렸다. 아무리 난해한 책도 절반까지는 읽어보려 하는 편인데, 이렇게 빠른 손절(?)은 처음이다.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추천사도 있고, 저자 역시 출판한 책이 여러 권 되었는데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 처음엔 나의 독해력을 탓하며 문장을 되짚어 읽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내 안에 고이지 않았다.


독서는 철저히 혼자서 하는 일이지만, 어떤 대상과 말없이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활자를 읽었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말이 흘러들어온다. 그건 저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나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세계, 그 너머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 독서가 나에게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런데 방금 30분 만에 덮어버린 책은 계속 혼잣말만 했다. 독자가 자기 생각을 끼워 넣을 여유와 천천히 곱씹을 시간을 주지 않고 그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을 멈춰 세웠다.


예전에는 완독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고집 때문에 의미 없는 활자 읽기, 시간 죽이는 독서를 이어가야 했다. 의무감으로 읽는 책은 그 어떤 내용도 머릿속에 잘 스며들지 않았다. 기어이 다 읽어 내긴 했지만, 그 이후로 '독태기'가 후유증처럼 남았다. 억지로 책을 읽을 바에는 다른 취미를 찾는 편이 낫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읽는 즐거움이 사라진 독서는 아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미완의 독서를 서슴지 않는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하듯이 말했다.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 그동안 지루한 책도 참아가며 완독을 했거든. 그랬더니 책 읽기가 너무 무거워진 거야.'라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맞아. 나도 알아. 가벼워지면 조금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어.


읽던 책을 중간에 멈추고 싶은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걸 두고 '실패'나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서는 출발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도착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여행과 같다. 이 여행에서 집중해야 하는 건 길 위에서 만드는 풍경, 감정, 생각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시각각 새로워지는 자신이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 다음 책을 펼칠 마음이 있다면. 다음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다.



마녀의 서랍_네 번째 칸

실패의 미덕 (샤를 페팽 저, 마리서사 출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실패는, 세상이 실패라고 규정짓는 일을 총칭한다. 편의상 '실패'라는 단어를 빌려 썼지만 길게 풀어쓰자면, '인간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듭 실행하는 도전'쯤이 아닐까? 아직 목표에 닿지 못했을 뿐 도전이 계속되는 이상 '실패'라고 규정 지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만약 도전하기를 멈춘다면, 원하던 목표가 사라진다면 실패했다고 단정 지어도 될 것이다. 아직 성공을 얻지 못한 도전들, 그러니까 책에서 편의상 '실패'라고 부르는 그 일이 때론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인다. 결과보다는 그 과정 안에서 느끼고 배우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쁨은 잠시지만, 실패의 뜨거움은 오랫동안 나를 부추긴다.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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