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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Nov 30. 2021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식물과 함께 지내는 사계절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다 오랜만에 버스정거장 근처에 있는 남천을 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봄햇살을 받으며 파릇파릇 새싹이 나오고 있었는데, 어느덧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 남천나무 잎은 빨갛게 물들고 열매들도 검붉게 영글어가고 있었다.


‘벌써 가을이구나. 참 세월이 참 빠르다.’


분명 하루하루가 지나는 것을 지켜봤으면서도 몇 개월이 한꺼번에 훅 지나버린 것 같이 느껴질 때 내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세월이 빠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제 막 월요일이 시작된 것 같은데 어느새 금요일이고, 1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 코앞에 다가온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세월 참 빠르다.”

새까만 머리가 하얗게 변할 만큼 긴 시간을 살아오고도 세월이 빠르다니, 당시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했던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 10대는 10배속으로, 20대는 20배속으로 세월이 지나간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다. 10배속으로 살던 내가 60배속의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



식물을 키우다 보니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더욱 민감해졌다.


봄이 오면 따뜻한 햇살 아래 예쁜 꽃을 피워낼 식물들을 떠올리고, 땅속을 뚫고 올라올 새싹들을 기다린다. 겨우내 움츠리고 멈춰있던 생장점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기지개를 켠다. 막 올라오는 연초록 이파리들은 언제 봐도 설렌다.


여름 장마철이 다가오면 뜨거운 온도와 높은 습도를 싫어하는 식물들이 걱정된다. 작년 여름에 이별한 다육이들과 뿌리가 물러 떠나버린 식물들을 떠올리다 올해 걱정되는 식물들에게 각별히 애정을 쏟아본다. 다행히 고온다습한 환경에 적합한 식물들은 여름날 최고의 성장을 경험한다. 넓은 잎을 활짝 펴고 키를 쭉쭉 키우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다 키운 것처럼 그렇게 뿌듯하고 흐뭇할 수가 없다.


가을에는 사람은 물론 식물들도 자라기 가장 좋은 기온과 습도가 된다. 다육식물들도 관엽식물들도 적당한 관심만으로 알아서 잘 큰다. 자연에서 다 해준다. 적당히 내리쬐는 햇빛, 적당한 습도와 바람. 그야말로 나는 구경꾼이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 겨울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미리 준비한다.


겨울에는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실내로 들여와야 한다. 그러곤 적당한 바람과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위치와 환기에 신경 써야 한다. 즉 다른 계절에 비해 2~3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추위에 강한 식물들도 그대로 두었다간 초록별로 보내기 십상이다. 그러니 전날 밤 일기예보를 꼭 챙겨보고 대비해야 한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을 지내면서 난 또 몇 달 남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 설레어한다.



이렇게 나와 식물의 사계절을 보내고 나면 1년은 금세 흐르고 또 그다음 1년도 어느새 흘러있다. 사계절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기다리게 된 것은 식물을 키우면서이다. 신경 쓰고 기다리고 민감하니 계절과 시간에 예민해지고 눈과 귀를 더욱 기울이게 된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지만 식물들과 함께 그 시간을 예민하게 즐기고 느끼는 것이 참으로 좋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한없이 아쉽고 야속하지만 시간을 잡아둘 순 없다. 그저 순간순간을 즐길 뿐이다. 추억과 기억을 남기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될 것이다. 내 식물들도 내 주변의 모든 것들도.


시간은 흘러 사라져도 사랑한 순간의 기억과 추억들은 영원히 가슴속 깊이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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