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가끔 찍는다

by 만일



그러고 보니 나는 태어나서 고양이를 만져본 기억이 없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에서 가끔 강아지를 키워서 슬쩍 찔러본 적이 있고, 강아지를 키우는 친한 친구도 있어 그래도 강아지랑은 아는 척을 좀 해보았다. 하지만 이 대 반려 시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는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고, 설령 그런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더라도 섣불리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그들의 생김새나 눈빛, 웅크리고 있을 때의 곡선은 맘에 든다. 길 가다 종종 눈에 들어오는 자들이 있으면 멀리 떨어져서 카메라에 담는다. 주차난과 오르막길이 어우러져있던 동네에 살 적에 가만히 보면, 그들은 날이 슬슬 차가워질 때쯤부터 아슬하게 주차된 승용차 밑에서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쁜 입김을 내뱉으며 집으로 돌아가다가도, 은색 소나타 아래 평온한 상태의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가며 줌을 한창 땡긴 사진을 네 장 정도 찍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가끔 찍는다. 비슷한 감정의 대상으로는 비둘기가 있다. 비둘기는 움직임을 더 예측할 수 없다. 참새나 까치와는 달리 비둘기의 약간 돌아버린 듯한 눈동자가 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비둘기가 한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세균이 후두두 떨어진다는 얘기를 또 어디서 들었는지, 나는 걔들이 한번 푸드덕할 때마다 등골이 쭈뼛섰다.


그런데 비둘기 역시 웅크리고 있을 때는 제법 귀여운 면이 있다. 그런 비둘기가 눈에 들어오면 그네들을 굳이 찍는다. 방 창문 앞에 두세 마리가 오손도손 앉아있었을 때도 굳이 그 뒤태를 갤러리에 남겨놓고 나서야 창문을 두드렸고, 청계천 근처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한 무리의 비둘기 떼를 발견하면 굳이 사진에 담고 그런다.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은데 순간은 남겨놓고 싶은 이 심정은 내 마음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고, 궁금하고 신기하나 내 삶에 들이고는 싶지 않은 마음인 것일 수도. 또는 갖고는 싶지만 다른 것들을 놓으면서까지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를 억누르고 있는 마음일 수도 있고. 그들의 마음은 내가 절대절대 갖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신포도를 바라보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굳이 짜내 본다.


이 마음을 더 알아보려면 고양이를 한번 만나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비둘기 까지는 좀 그래.



#2023여름

#글감 :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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