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월 4일 동물보호의 날 지정을 환영합니다.

동물보호(Protect)에서 동물복지로(Wellbeing)

by 아자모노

10월 4일. 동물보호의날 지정은 한 사람의 수의사인 제게 단순한 기념일 이상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올해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법정 동물보호의 날'로 지정된 2025년은 저는 벅찬 마음과 동시에 수의사로서 매일 마주하는 생명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저는 철학을 잘 모릅니다. 매일 동물의 고통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그들의 생명을 위해 싸우는 임상 수의사입니다. 그래서 이 날의 법제화가 왜 중요한지, 저의 언어와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의 한 축에는 세상을 뒤흔든 거대한 철학적 담론이, 다른 한 축에는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현실적인 윤리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수의학을 공부하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배웠지만,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준 것은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었습니다. 이 책은 '동물이 불쌍하다'는 막연한 감정을 넘어, '왜 동물의 고통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차가운 논리를 제게 던졌습니다.


그가 제시한 **'종차별주의(Speciesism)'**라는 개념은 제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물의 이익을 하찮게 여기는 편견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 태도라는 그의 주장은,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는 존재(Sentient being)이기에 그들의 '고통받지 않을 이익'은 인간의 것과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실험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제 진료실 안에도 미묘하게 존재하던 인간 중심적 사고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왜 우리의 도덕적 의무인지에 대한 철학적 뿌리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동물보호의 날' 제정은 바로 이 '종차별주의'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며, 동물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약속이기에 제게는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개와 고양이의 윤리학』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겨냥하는 거대한 담론이라면, **『개와 고양이의 윤리학』**은 그 윤리적 돋보기를 우리 집 거실과 진료실 안으로 가져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반려동물과 맺는 관계의 근본부터 다시 사유하게 만듭니다.


책은 **"애완동물을 태어나게 해도 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시각을 '장난감 모형', '피보호자 모형', '반려자 모형' 세 가지로 분석하며, 심지어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자 모형'조차 우리가 동물을 사고팔고 중성화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나아가 고양이와 개의 시선으로 구체적인 딜레마를 파고듭니다. 캣맘 논쟁과 같은 길고양이 문제를 다루면서, 고양이를 다른 유해동물과 다르게 대우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종 차별주의'**일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다양한 행복 이론을 통해 고양이의 진정한 행복은 배회와 사냥이라는 본성을 억압하지 않는 데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개의 선택적 교배 문제에 대해서는 '귀여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이라고 진단합니다. 인간의 취향에 맞춰 태어난 개들이 평생 유전 질환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을 '비동일성 문제'라는 철학적 관점으로 검토하며, 이는 명백히 비윤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개 식용 문제에서는 '개는 친구'라는 감상적 주장과 '개고기는 문화'라는 상대주의적 반박을 모두 넘어서, **'감응력 있는 존재에 대한 해악의 금지'**라는 새로운 보편 윤리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결국 이 책은 **"우리는 개와 고양이를 진정으로 책임지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반려'라는 아름다운 말조차 기만적인 상상이 될 수 있으며, 진정한 책임이란 감정을 넘어 그들이 자신의 본성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환영의 이유: 두 권의 책이 만나는 오늘


제가 '동물보호의 날' 지정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날은 피터 싱어가 외친 '해방'이라는 거대한 이상과, 『개와 고양이의 윤리학』이 파고드는 '관계의 윤리'라는 현실적인 고민이 함께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대원칙(동물 해방)에 사회가 동의하고, 그 원칙을 내 곁의 반려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개와 고양이의 윤리학)를 모든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자는 국가적 선언인 셈입니다.


한 사람의 수의사로서, 이 날이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동물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지고, 우리가 반려동물과 맺는 관계의 윤리적 무게를 모두가 함께 성찰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소망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스런 단두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