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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단두종

단두종아이들은 건강검진을 자주 해야 합니다.

by 아자모노

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많은 생명들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 늘어난 유독 제 마음을 사로잡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렌치불독, 보스턴테리어, 퍼그, 시츄와 같이 코가 짧고 얼굴이 동그란, 사랑스러운 단두종 친구들입니다. 해맑게 웃는 그 얼굴들을 마주할 때마다 제 마음 한편에는 큰 기쁨이, 다른 한편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자리 잡습니다. 이 아이들의 특별한 매력만큼이나 특별한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단두종 친구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강함 이면에 교활한 그림자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뇌종양(신경교종)과 심기저부 종양이라는 보이지 않는 암입니다.


이 두 가지 종양은 통계적으로 다른 견종에 비해 단두종에게서 월등히 높은 발생률을 보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종양들이 초기에는 거의 아무런 증상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활발하게 산책하고, 맛있게 밥을 먹고, 보호자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만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곳에서, 암세포는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우리 아이는 너무 건강했어요" – 소리 없이 찾아오는 위협

오늘 너무 착하고 신사다운 프렌치불독 아이가 내원하였습니다. 매일 유치원을 보낼 정도로 아이를 아끼던 보호자님은 당연히 동물병원에도 자주 방문하였습니다. 청진, 체온 등의 신체검사에서 늘 이상이 없던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호흡곤란을 보였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야 흉강의 2/3을 채운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담당 수의사선생님께서도 너무 놀라고 걱정이 되어 바로 저에게 진료를 의뢰하셨습니다.


검사결과 심기저부종양이 1차적으로 의심되었습니다. 검사결과를 담담히 들으시던 어머님과 따님은 갑자기 왈칵 눈물을 쏟으시고 펑펑 우셨습니다.

"더 일찍 왔어야 하나요?"라고 물으시며 자책하셨습니다. 매달 동물병원을 가셨고 충분한 신체검사를 하였으니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건강검진을 미리 하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사람에 비해 너무 빨라 이런 경우가 흔하게 있습니다.


뇌종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엑스레이는 쉽게 찍을 수 있지만, MRI는 30분이상 마취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달리 동물은 건강검진을 목적으로 MRI 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발작이나 급격한 시력 소실, 마비와 같은 심각한 증상으로 발현되었을 때는 이미 종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단두종 암 진료의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어 신체검사만으로는 암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렵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치료가 까다로운 상태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마취가 무서워서요" – 희망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이유

하지만 진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절망하기에는 이릅니다. 다행히 세계적으로 프렌치불독의 유행으로, 많은 수의사들이 "단두종"의 질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단두종의 호발질환 - 안과, 마취, 암 등" 만으로 한 강의실에서 하루종일 강의가 열리기도 합니다.


많은 보호자님들이 치료를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마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단두종은 짧은 코, 좁은 콧구멍, 길쭉한 연구개 등 해부학적 구조의 특수성 때문에 마취 후 호흡기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다른 견종보다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마취를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죠?"라며 치료 자체를 포기하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마취전 위산분비억제제를 투약하거나 체중감량을 하면 마취위험율이 줄어든다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었고 단두종의 마취프로토콜도 많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마취 프로토콜과 함께라면,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는 더 이상 위험한 도전이 아닌, 우리 아이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희망의 도구가 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정위 방사선치료(SRT)와 같이 종양에만 정확하게 고선량의 방사선을 조사하여 치료 횟수(마취 횟수)는 3~5회로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주변 정상 조직의 손상은 최소화하는 첨단 치료법이 도입되어 더 나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뇌종양과 심기저부종양은 방사선치료가 필요합니다.)


사랑하기에, 우리는 더 알아야 합니다

정기적인 영상 검진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5살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1년에 한 번 정도 흉부 엑스레이나 복부 초음파 검사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단두종을 사랑하는 수의사(저도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랑하는 시츄 순금이를 키우고 있습니다.)이자, 암과 싸우는 모든 생명을 응원하는 동반자로서 보호자님들께 아이들의 검진을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단두종 친구들이 겪는 아픔은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을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은, 그들을 가족으로 맞이한 우리의 책임이자 특권입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진료실에서 그 길에 늘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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