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모든 교활함과 위선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에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베드로전서 2장 1,2,3절)
『그러므로 그분께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로우시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거부한 그 돌이 되셨느니라. 바로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되, 순종하지 아니하여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 그리되었나니, 그들은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졌느니라.』(베드로전서 2장 7,8절)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너희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자기들이 바라볼 너희의 선한 행위들로 인해 그 돌아보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리함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장 12,15절)
~~~~~~~~~~~~~~ 성경말씀 ~~~~~~~~~~~~~~
모든 비방하는 것을 버려라! 즉 선하지 아니한 것을 버려라 하는 것을....... 주님을 믿는다면서 얼마나 주님의 뜻을 알고 있는가? 주님의 무엇을 믿는가? 제자들이 권력을 다투던 것처럼........ 세속적인 야심(野心)으로 믿는가? 역시 에덴동산에 선악의 열매를 품었던 두 사람처럼....... 타락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후예들의 악은 점점 자라서 바벨탑을 쌓고 쌓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은 저희들처럼 악행을 버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 이유를 베드로는 잘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교인들은 겉 믿음만 추구할 뿐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베드로전서 2장을 깊이 묵상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될 게다. 이 본문을 가벼이 여기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아니다. 이 본문을 깊이 들여다보는 마음은 성령이 도우심에 있다. 하나님의 뜻에 있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며........ 가리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버지가 보내신 사람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7장에 있으니......... 꼭 깊이 읽으면 큰 은혜로 가슴이 떨리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6, 7, 9, 15, 24, 26절]만이라도 꼭 읽게 되기를 바란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6절)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나이다.......”(9절)
“나의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기도하지 아니하며, 다만 그들을 악에서 지켜주시라고 기도하나이다.”(15절)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24절)
예수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자주 말씀 하셨다.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이 택한 자만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은 남을 비방하는 말을 아주 쉽게 한다. 또한 현대의 정치사회를 보면, 온갖 비방할 말들을 만들어내고, 공격의 무기로 삼고, 편을 나누고, 민심을 선동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을 한다. 이제는 인터넷이란 기술을 이용하여 어디서나 어느 때나 비방의 글들을 내뿌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온통 거짓말이 참인 양 누비고 돌아다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최초에 비방의 말은 에덴동산에서 선악의 나무 아래에서 아담과 이브가 뱀에게서 듣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기서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했다.
뱀의 생김새나 행동을 보면 이해할 수가 있겠다. 나는 어릴 적에 산과 들을 놀이터로 돌아다닐 때에 수많은 들짐승들을 보았고, 잡기도 했었다. 웬만한 들짐승은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뱀만은 도구를 이용하여야 했었다. 독 있는 들짐승은 참 많았다만 뱀처럼 간교한 것은 없다. 뱀은 순식간에 물기 때문이다. 왜? 창조주 하나님은 이런 뱀을 만들었을까 하는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뱀이 여자에게 던진 말에는 거짓과 선동과 비방이 숨어있었다. 즉 비방의 말에는 반드시 선동과 거짓이 함께 동반한다. 거짓 없는 비방의 말은 없고, 선동의 목적이 없이는 비방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비방은 시작된 것이다. 그다음은 하나님이 아담과 여자를 불러 물으니, 아담은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핑계? 변명? 회피하려는 말을 했다. 그 말속에는 이미 비방의 말이 담겨 있었다고 보아진다.
항상 인간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꼭 남을 비방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놀랍다. 비난이나 시기를 하나의 예쁜 멋으로 치장을 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같은 마음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 후에 에덴동산을 떠난 아담의 가족 중에 가인이 또한 비방의 말을 했다. 이처럼 비방의 농도는 점점 커지게 되고 짙어지게 되어서는 결국에는 살인하는 데까지 가고 만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창조자에 대한 저항이거나 도전인 것이다.
이러한 비방하는 말에는 악이 근원인 것이다. 어떠한 비방일지라도 말이다. 베드로는 놀라운 말을 했다. 비방(誹謗)하는 말이나 모든 악의(惡意)와 모든 교활(狡猾)함과 위선(僞善)과 시기(猜忌) 등은 다 한 통속이라는 것이다. 모두 악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의 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탄의 악이 아닌 것이다. 사탄은 유혹할 뿐이다. 사탄은 스스로 악을 행하지 못한다. 귀신이 사물을 잡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서는 행하도록 유혹한다는 것이다. 물론 유혹하는 것도 악의 근원이지만, 악한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악의는 악의 가지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자, 깨달은 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며,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여 믿기 때문에 악의 가지들이 되는 악의들을 멀리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이 말씀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갓 태어난 아기들은 하나님의 선함으로 지으신 피조물인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아기는 아직 눈도 뜨지 않았고, 어떤 지식도 없으나 모태에 있을 때에 자신을 품어준 여인(여자)을 안다. 그러므로 아기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 여인의 젖을 사모한다. 그래서 그 젖을 먹고 자란 아이와 소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처음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다르게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순수한 아기는 세상에 속한 어미로부터 수많은 정보를 얻으며 자라게 되고 세속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세상 어른들은 말하기를 성숙해져 간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세상의 자격을 갖췄다는 것이다. 즉 인본주의 사상에 잘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잘 아는 베드로는 그 갓 태어난 아기가 젖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한, 진리를 알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죄에서 자유 함을 얻는다고 했다. 여기서 죄란? 윤리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죄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삶이란 세상으로부터 분류된 삶, 경건한 삶, 거룩한 믿음을 유지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는 이처럼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에는 성령이 이끄신다는 것이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있지만, 말씀을 깨닫고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는 것은 성령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회당에 있는 두루마리의 말씀을 사모하였다. 그러기에 회당에서 율법학자들과 진지한 토론을 하지 않았는가? 또는 광야 사십일 동안에 사탄의 유혹에도 말씀으로 이겨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갈릴리를 돌아다니시며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 아닌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전한 뜻을 아는가? 그 답을 예수님은 기도문으로 가르쳤다. 기도문은 이렇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13)
기도문의 앞부분의 이 말씀을 먼저 확실히 믿어야만 다음 기도가 이루어진다. 이 기도문의 뜻을 아는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깨닫지도, 알지도, 믿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씀을 순수한 젖을 사모하는 아기처럼 사모하고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뜻을 이해할 때에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성령이여! 택하심을 받는 자에게 부르심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