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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마음을 버리면 약해진다

[독서와 생각]

by trustwons

69. 마음을 버리면 약해진다


의과대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음을 버리는 것이 환자를 위해 더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이라고 교육받았다.

결국 나는 더 좋은 봉사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인간성을 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제대로 봉사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탈진시키고 냉소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점차 무감각해지고 외로움에 빠져 우울증에 걸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을 버리면 인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 안에는 삶의 어떤 체험을 변화시키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찾고 인생을 완성시켜 가려면 지식이나 전문성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마음을 계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식만으로는 인간답게 살거나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쓴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



강퍅한 사람이란 마음을 버린 사람일 거다. 인간이 약해질수록 마음을 닫는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는 견디기 힘든 일들이 많다. 의사도 그렇다. 그럴수록 마음을 지켜야 한다. 거짓 가면을 벗고 진실하려고 노력한다면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버린 사람이나 마음을 닫은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상일 수가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비틀어지거나 왜곡되거나 닫히거나 한 마음은 결국은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어찌 보면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또는 힘든 일을 회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심야에 자살상담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자살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분을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결국엔 막바지에 도달하게 될 때에, 자살의 문 앞에 오게 된다. 마포대교에서의 자살률은 높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많은 분들이 자살을 하기 위해 마포대교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포대교를 찾아갔다. 대교난간에는 위로의 문구들이 쓰여 있다. 그리고 생명의 전화의 전화박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침 해 지는 시간 때여서인지 노을이 보였다. 무심히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가라앉는다. 자살하려는 분들은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마도 마음을 버린 것이 아니라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살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붙잡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자살상담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괴로워서가 아니라, 외로워서가 아니라, 삶이 무의미 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무관심에서다. 즉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무관심의 상태에 있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관심받기를 원한다. 물론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의 사연을 들어준다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의사는 상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마음을 버려야만 흔들리지 않고 진료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마음을 버리거나 닫아버리거나 외면한다면, 그것은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보다 무서운 결과를 만들게 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에 가인의 태도는 무관심, 즉 마음을 버렸던 것이다. 동생에 대한 마음을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가 나의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창 4:9)


즉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관계를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버리게 되면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까지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도 마음을 닫아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신체의 장기 중에 하나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관계에 있어서도 애정을 심장이 뛰는 걸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애정, 사랑은 마음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또는 마음을 감정적 반응으로 생각하여 기쁨과 슬픔 등을 오감을 통해 인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또한 행복과 불행을 의식하는 것에서도 역시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마음이란 것을 통해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있어서 사랑하고 정을 나누고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마음이란 없다. 그러므로 동물은 자연원리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에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인간관계처럼 관계를 표현하며, 동물도 마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편하거나 그릇된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즉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소나 돼지나 닭 등을 잡아먹을 수 없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식탁 위에 놓인 소고기를 바라보며, “어떻게 소의 마음이, 미안해서 어쩌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어린이의 동화 중에서도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 대화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다. 이러한 것으로 어린이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의식화되어 가는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슬프게 여겨진다. 즉 사람의 가치와 관계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물과 생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단지 말씀만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만은 하나님의 신성을 닮은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그것도 말씀만으로 아니라 친히 흙을 빚어서 외형을 만들고, 그리고 친히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만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마음이 있어서 정을 나누고 생각을 하며 언어를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듯이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며, 또한 마음이 품은 것들이 허상이 아니며 실체라는 것을....... 그리고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마음이 범한 것을 사실로 말했다.


「여자를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신체의 일부는 아니지만 인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즉 마음은 인간의 영혼의 그릇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버리는 행위는 실제로 마음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없앴다는 것이 된다. 즉 무관심의 상태로 있겠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


“난 네게 마음이 없어.”, “너에게 관심이 없어.”, “너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거야.”, “너에 대한 마음을 버렸어.”


마음을 버리면 많은 것을 잃게 되고, 의지력도 약해지게 된다. 즉 마음의 영역이 좁아져서 인생에 대한 참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며, 결국엔 스스로 소외된 관계로 우울증에 빠지게 되기 쉽다. 마음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존재의 인식, 가치, 의미를 일깨우는 곳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하겠느냐?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법이다.」(마태 12:34)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위증, 비방이 나온다.」(마태 15:19)

「또한 예수께서는 사람에 대해 그 누구의 증언도 필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요한 2:25)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가는 법이다.」(누가 12:34)


이처럼 성경에서도 마음은 곧 그 사람의 주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즉 그 사람됨은 그 사람의 마음으로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곧 믿음은 그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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