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우리가 두려워하자. 」(히브리서 4:1)
「…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히브리서 4:3)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브리서 4:9,10,11)
~~~~~~~~~~~~ Bible ~~~~~~~~~~~~~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 있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별을 바라보게 하시고, “네 자손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셨다. 그리고서 모세에게는,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라고 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으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이 강퍅하였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처럼 오늘날에 예수 그리스도,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 3:15)고 하셨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그의 안식에 들어갈 자를 위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때에, 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그들도 쉬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택하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믿음의 도리, 즉 처음 믿음의 고백을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왜일까? 그 처음 믿음은 성령의 역사가 개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 믿음의 고백은 참으로 진실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 애굽 땅에 정착해 살았던 그들은 이방문명에 깊이 빠져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예처럼 곤욕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본 하나님은 노아처럼 아기 모세를 방주로 나일강에 띄워 애굽의 공주의 마음에 불상함이 있게 하시어 인연이 되게 하였다. 그런 모세는 광야로 이끌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던 것이었다. 모세의 신앙심이 어떠한지는,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하시길,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세는 곧 하나님을 알아보고는 자기 얼굴을 숨겼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모세는 첫 선지자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타락한 음란한 인간들을 깨우치려고 했었다. 그러나 깨닫지 않자. 므두셀라(그가 죽으면 세상에 끝이 온다)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깨우게 했었다. 그래서 인류가 멸망할 때에 노아의 가족만 구원하신 것이다.
이처럼 첫 선지자로서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하셨지만, 결국 이들은 마음이 강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성경의 히브리서는 유대인을 위한 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삼으심에는 두 가지의 뜻이 계셨던 것이다. 첫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둘째는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제사장 나라를 세우심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은 알고 있었다. 메시아, 세상을 구원할 그리스도, 예수가 오심을 말이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한 유대인들은 늘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거나 목이 곧아서 이방인의 우상에 열성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이웃나라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는가? 즉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그들에게는 두려운 대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기 때문에 첫 문에서부터 말하기를,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올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해 조목조목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의 복음을 믿는 이들, 이방인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라 일컫는 시대에 그의 음성을 듣는 때에, 광야생활 사십 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아니하고 강퍅한 마음을 품은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못한 것처럼,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2,3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3장에서부터 말하기를,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말하면서, “우리가 믿는 도리(깨달음을 얻은 바)의 사도 되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칠일에 쉬신 것같이 그들도 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의 안식에 들어갈 자를 위해 약속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복음의 말씀인가? 이미 먼저 믿고 하늘나라에 간 자들은 쉼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안식에 들어갈 자를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에 한 죄수는 예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함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에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살아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함께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늘’이란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는 어느 때에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시 이루어짐을 말하신 것이다.
이처럼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쉼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기 전에 성도들의 몸은 무덤에 갇혀 있었지만, 부활하는 때에 모두 무덤을 열고 살아나 주님의 안식에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성도들은 무덤에 갇혀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곧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곧바로 주님의 안식에 함께 있어 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라섬 소녀 이야기」의 동화에서 소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이하늘이란 여인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히 4:11)의 말씀처럼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뜬구름처럼 종교적인 신앙심으로 자족하는 믿음이 아니라 성경에 모든 말씀이 사실(fact)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을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알게 되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의 섭리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얼마나 세밀하게 가르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라면 말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추신>
1. 성경은 모두 사실이며, 실존이며, 진리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는 설화가 아니며, 신화가 아니라 실존자이며 사실이라는 것이다.
2.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의 안식에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3. 끝으로 예수를 믿는 자녀들은 진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능력, 안목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즉 양은 양을 알아보지만, 염소는 양처럼 행동하지만 자신이 양인지 염소인지 조차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4.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으로 전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말하듯이 전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참 양은 참 목자를 알지만, 거짓 양은 삯꾼목자를 따른다고 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