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믿고 기다리는 마음

[知言2]

by trustwons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4. 믿고 기다리는 마음


삶과 어깨동무를 한다는 것은 때로 아주 복잡한 일이다. 때로 우리는 무조건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도와주려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 임시적인 방편이 될 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축복해 주는 방법은 그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나가도록 지지해 주면서 가만히 어깨동무해 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직 신뢰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그 믿음이 그의 삶에 커다란 버팀목이 된다.

<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



부모가 자식을 바라볼 때, 마음을 놓지 못하고 결국에는 부모가 강요하게 된다. 자식이 스스로 어떤 일을 선택하고 헤쳐 나가도록 기다려주지 못한다. 또는 친구나 애인에게도 보호하고 도와준다는 마음이 앞서 그의 진실한 문제를 보지 못하거나 가볍게 생각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진정한 어깨동무가 못되기 때문이다.

삶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여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애인도 말이다. 자신의 삶을 어깨동무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삶도 어깨동무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진정으로 축복해 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믿고 기다릴 줄 안다.



[단상]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대체로 인간들은 믿어줄 때에는 매우 조금함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느낀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다고 말이다. 대체로 부모들이 그렇다. 자식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스스로를 인정해 주려는 욕망이 매우 많음을 보게 된다. ‘지나친 사랑’ 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식에 너무 빠져있다거나, 너무 지나치도록 잘해주려는 듯이 보일 때면 그리 말한다. 사랑이 너무 지나쳐! 그러면 자식들이 삐뚤어지기 쉽지. 또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자식이 커서도 그 사랑을 알까? 그러면서 적당히 사랑해주어야 해~ 또는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식은 커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지.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해왔었다.

이러한 인식이 종교생활에서도 역으로 적용이 된다.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야지~ 대충 믿어야 되겠어? 그러면서 종교적 활동을 예를 들어 말한다. 그토록 인간은 겉보기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피곤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부모의 자식 사랑에 피곤한 삶을 살게 되고 그런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이 아주 보편적인 인식을 인간들은 가진다.

믿음, 사랑 등에 있어서는 기다리는 마음보다는 조급한 마음이 더 크게 작용을 한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믿음, 사랑은 반드시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를 믿는지, 누굴 사랑하는지 말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본다면, 지나친 사랑과 믿음이 그릇된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음을 알게 된다. 그 반대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즉 지나친 의심과 미움도 기다려주는 마음이 없고, 조급함이 앞서, 선입견을 먼저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과 미움은 믿음과 사랑보다 더 강렬하게 주관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특히 의심과 미움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도 주관적인 성격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지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배운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라! 이런 식이다.

그럼,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또는 사랑한다고 하며 믿어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믿음과 사랑은 서로 다름이 아님을 아는가? 사랑과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고, 근원도 하나라는 사실을 알까?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사랑하지만 믿고 싶지는 않아~ 또는 믿지만 사랑할 수 없어!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 무슨 괴변인가?

사랑하는 데도 믿을 수 없다니? 믿지만 사랑할 수 없다니? 이는 모두 사랑이 사랑은 아니고, 믿음이 믿음도 아닌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기적인 마음이기 때문이라 말할 수가 있겠다. 오늘날에 많은 사랑 이야기에는, 사랑에 대한 대중가요에서도, 뭐가 그렇게 복잡할까?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둥, 사랑하기 때문에....... 등등 사랑에 대한 노래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게 불었어도 여전히 사랑인 무엇인지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랑은 매우 복잡하다고, 사랑은 다양하다고 말해버리면서 세상은 요지경이라며 묻어버린다.

그러나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참 진실한 마음에 있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전적으로 믿어주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예수님은 청결한 마음이라고 했다. 즉 맑은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맑다 함은 거짓이 없는 마음, 곧 진실한 마음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이 매우 복잡하여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이 진실하고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솔로몬의 전도서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도서 3:11)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악한 것을 품고, 또는 그릇된 것(인본주의적인 이념들)으로 채움으로 인해 어두운 세상을 만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세상이라 함은 진실이 가리어져 있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마음이란 세상의 이념으로 가득 찬 마음인 셈이다. 그러니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은 이념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것조차도 부족해서 인공지능체(AI)에 의존하려는 극도에 이르렀다. 그만큼 어두운 마음은 점점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조차 없음을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이념의 노예로 사는 것조차도 자신이 없고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대신 판단해 주는 대상을 찾으려고 하고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마음에서는 어떤 것도 믿으려고 하지 못하며,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하나님처럼 믿고 기다려주는 분은 없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렸겠는가? 이에 대하여 예수는 좋은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성경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이 자신의 유산으로 받은 재산을 가져가 아버지를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후에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의 후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리시고는 믿고 기다리는 마음에 사랑을 알게 하시려고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던 것이었다. 그냥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니셨다. 돌아오라고 수많은 표적과 이적을 보이시며, 그리고 인류역사 속에 자신의 존재함을 기록하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깨닫고 아는 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러한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마음을 품게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도록 예수님은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을 끝없이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 사랑에 대해서 기도문에서까지도 가르치셨다. 즉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 6:12)에서도 말씀하셨다.

이제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면 한다. 이러한 마음은 겸손하다. 이러한 마음은 진실하다. 이러한 마음은 하늘의 지혜가 있다. 이러한 마음은 남을 구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은 개인의 인격을 존중한다. 이러한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 이러한 마음은 참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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