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창밖에는 하얀 눈이 내려있어서 바깥풍경이 온통 하얗게 되어있었다. 나무들도 하얀 옷으로 덮고 있었고, 옆 건물사이로 보이는 거리마다 하얗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풍경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겨울의 차가운 공기에 매력을 느끼곤 했었다. 아니 그녀는 여름의 공기도 잊지 못한다. 그녀가 느끼는 겨울공기는 매섭다, 차갑다, 이런 표현보다는 무겁다, 신선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반면 여름의 공기에는 후덕지 근하다, 뜨겁다, 이렇게 느껴지기보다는 가볍다. 답답하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겨울의 공기와 여름의 공기를 매우 좋아한다. 왜 그럴까? 그녀에게는 호흡을 통해서도, 얼굴의 피부를 통해서도 무엇인가 말을 해주는 듯해서 외롭지 않았고, 친구처럼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어둠뿐이었는데,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공기가 어떤 때는 무겁게 느껴지다가 가볍게 느껴지다, 어떤 때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주다가 가버리는 느낌에서 그녀는 친구처럼 여겨졌고,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대화를 가지게 되었던 것에 그녀는 늘 좋아했고, 때로는 행복해했었다.
그녀에게 겨울바람과 여름바람은 든든한 친구 같았다. 그러나 봄바람과 가을바람은 가볍고 그녀를 설레게 하는 친구 같았다. 특히 그녀에게 찾아와 주는 그들이 참 고마워했으며 그리워했다.
그녀는 다시 커피 잔을 앞에 작은 탁자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는 점자성경에서 창세기를 읽고 있었다. 그때에 그녀는 한 말씀에 손이 멈춰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이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가 싶더니, 다시 하늘 쪽으로 돌리고 그리고는 다시 성경의 점자를 짚어가며 읽고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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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성경의 어떤 말씀에 저러는지 궁금해하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살며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놓인 점자성경 책을 내려다보았다. 성경은 점자로 돼있어서 어머니는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펼쳐놓은 점자성경에 창세기 8장을 열어놓은 것만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어느 부분에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는 궁금해하였다. 그녀의 손끝이 가 있는 곳을 보니, 창세기 8장 22절이었다.
「땅이 존재하는 한, 씨 뿌리는 것과 추수하는 것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여기, 이 부분에서 생각이 멈춰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래서 창문을 살짝 열고는 얼굴에 겨울공기를 느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여기에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의문이 들기 시작을 했다.
‘왜,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 말씀을 꼭 집어서 말씀하셨을까? 땅이 존재하는 한이라니, 그렇다면 언젠가는 땅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씨 뿌리는 것과 추수하는 것을 강조하셨을까? 그럼 홍수 이전에는 뿌리고 추수하는 일은 없었을까?’
그녀는 잠시 침묵, 아니 말을 못 하니 침묵이라기보다는 꼼짝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에는 꼼짝하지 않고 돌비석처럼 몸이 굳어진 듯이 있곤 하였었다. 이런 사실은 그녀의 어머니는 알게 되었었다. 지금 그녀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채렷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안심을 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다 식은 커피 잔을 들어마셨다. 그녀는 다시 손끝을 움직이더니 또 생각에 잠겼다.
‘왜, 하나님은 노아에게 추위와 더위를, 그리고 겨울과 여름을 꼭 지적해서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추운 날과 더운 날 그리고 그날이 길어서 겨울과 여름이라고 하신 것일까? 그리고 왜 낮과 밤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을까? 홍수 이전에도 낮과 밤은 있었지 않았나?’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는 다시 창문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는 하늘을 보는 듯이 얼굴을 위로 쳐들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뭔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구나, 홍수이전에는 추위도 더위도 큰 차이가 없었어. 그리고 추운 날도 더운 날도 없었어. 그러니깐 홍수 이전에는 추위도 더위도 큰 차이가 없었어. 그리고 추운 날도 더운 날도 없었어. 그러니깐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춥거나 덥거나 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러니 그들은 옷을 어떻게 입을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지. 단지 그들은 옷을 몸의 수치(羞恥)를 가리는 이유였던 것이야. 그리고 낮과 밤의 기온차도 별로 없었어. 그러니깐 하나님은 노아에게 꼭 집어 말하기를 낮과 밤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거야. 낮에는 덥다가도 밤이 되면 추워지는 거지. 그래서 홍수 이후에 사람들은 추위를 막을 집을 지워야 했어. 그전에는 집이 꼭 필요하지 않았던 거야. 그냥 들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랬어. 나도 그렇게 지내보고 싶다. 그지,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야 하고, 잠자리를 해야 하고........, 참 불편한 짓이야.’
그녀는 생각에 잠기다가 빙글 웃는 모습을 그녀의 어머니는 보고는 안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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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아들 광일이와 대화를 가지려고 점자판을 두 대를 가져다 놓았다. 요즘에 점자판은 잘 나와서, 전자점자판도 있다. 그래서 점자로 치면 한글로나 영문으로나 화면에 나타난다. 반대로 되는 것도 있다.
“광일아~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하나님과 대화한 거 뭔지 아니?”
“응, 알아! 잠깐만.......”
광일은 황급히 성경책을 가져왔다. 그리고 부지런히 엄마가 말한 부분을 찾고 있었다. 광일의 엄마는 광일의 이런 행동을 전혀 모르고 광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일은 성경구절을 찾아내고는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구름사이로 무지개를 두어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아니, 그거 말고 노아가 제사를 드린 직후에.”
“음,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춥고 덥고, 겨울과 여름이, 낮과 밤이 그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래, 그 말씀에 넌 어떻게 생각하니?”
“당연한 거 아닐까요? 지금이 그렇잖아요!”
“왜 그리 말씀하셨을까 깊이 생각해 봐! 다른 좋은 말씀도 많잖니?”
“그러네요?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좋은 덕담이라도 하시지.......”
“세상이 달라진 것을 말씀하신 거야.”
“노아홍수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거요?”
“그래, 하나님은 항상 될 일을 말씀하신단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그리 말씀하신 거예요?”
“광일아~ 그러지 마라! 넌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슬퍼하지 마라!”
“몰라요. 이제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무엇이 엄마를 위한 거 같니?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고 싶지는 않지.”
“저도 그래요. 이제 엄마를 알아 가는데.......”
“이런 말을 하자고 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인데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그리 말씀하신 이유가 있단다.”
“그게 뭔데요?”
광일은 마음을 정리하고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광일의 엄마는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홍수 이전과 이후에 뭐가 달라졌는지를 알려주시는 거야.”
“춥고 덥고, 그리고 겨울과 여름이요.”
“그래,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이런 변화가 빨라졌다는 거야.”
“변화가 빨라졌다니요?”
“홍수이전에도 사계절은 있었지. 하늘의 별들로 그것을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니?”
“그래요.”
“하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변화가 심하거나 빠르지 않았다는 거였어.”
“그래서 사람들이나 동식물이 오래 살았겠네요?”
“그럼, 동식물의 수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사람의 수명은 천년이었지.”
“알아요. 아담이 930년 살고, 무드셀라는 969년 살았죠.”
“그래, 그들이 오래 산 것은 변화가 느린 거였어. 천천히 성장을 한 거지.”
“천천히 늙어간다는 거네요.”
“그렇지, 지금은 매우 빠르게 늙잖니?”
“아~ 그런 거군요. 자연의 순환이 빨라 진거나 마찬가지네요?”
“그래, 그래. 그것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단다.”
“엄마는 참 놀라운 분이셔요! 엄마처럼 하나님을 잘 아는 분은 없을 거예요.”
“그런 생각은 교만한 생각이야.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단다.”
“알아요. 햇볕과 비를 고루 내리시듯이 하나님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고루 은혜를 내리신다는 말씀을 알아요.”
“그렇지, 은혜를 아는 자에게는 더욱 그 은혜가 풍성해지지.”
“친구관계에도 그래요. 서로 고마움을 알 때에 더욱 관계가 깊어지고 굳어져요.”
“친구? 그래, 친구 많니? 엄마는 친구가 예수뿐이란다.”
“아네요. 엄마의 친구는 아빠도 있고, 나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잖아요.”
“그렇구나! 친구?”
“친구나 형제! 다 같은 의미가 있어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지요.”
“그래, 너에겐 형제가 없구나!”
“괜찮아요. 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있잖아요.”
“대화가 다른 길로 갔구나!”
“무슨 얘기하시려고 했어요?”
“음, 그러니깐 이 세상의 변화가 빨라졌다는 것이지. 시간이 빨라진 게 아니란다. 변화가 빨라졌단다.”
“홍수 이전이나 이후에 시간은 항상 같았단다. 그러나 자연은 이전보다 이후가 빨라졌다는 것이지.”
“그래서 인생이 백이십 년이 된 것이란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도 빨라졌단다.”
“그런데 엄마의 인생은 너무 빨라요!”
“광일아! 엄마를 슬프게 하지 마라~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자!”
“네! 알았어요. 엄마~ 사랑해요.”
이런 두 모자(母子) 간에 대화를 곁에서 지켜보던 그녀의 어머니도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물을 본 광일은 할머니를 끌어당겨서는 엄마랑 함께 셋이 서로 껴안았다.』
<이하늘의 인생소설, 어둠의 사십 년 중에서>
언제나 볼 수 없고, 듣지 못하는 그녀는 저 하늘을 보고 싶었는지, 항상 거실에 창가에 와 앉아서는 마치 푸른 하늘을 바라보듯이 얼굴을 창밖을 향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지식, 즉 진화론적인 이념이나 인본주의적인 사상에 깊이 메어 있어서 생각하고 말할 뿐이다.
여기서 진화론적 이념의 대표적인 하나는 유물론 사상인 것이다. 그리고 인본주의 사상으로써 근본은 노아홍수 이후에 첫 왕국을 세운, 영웅 니므롯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즉 영웅사상, 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과 같은 권력의 지배하에 인간들은 모여 사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볼 수조차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그녀에게는 보고 듣고 하는 과정보다는 손끝으로 읽는 것 외에는 어떤 과정으로 세상의 지식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일찍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었기에, 그 어둠 속에서도 그녀에게는 외롭지 않았으며, 성경의 지식, 즉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하나님을 가까이 느꼈으며, 또한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더욱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확고한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예수와의 관계를 실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저자는 놀랍게도 그녀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으며, 글을 쓰면서도 감격과 은혜를 공유할 수가 있었으며,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를 실존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저자는 상상의 하나님이나 예수가 아니라 실존하신 하나님과 예수를 인지하며, 또한 하나님과 예수를 동행하는 친구처럼 매우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인생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예수가 이끌어주었다는 것으로 저자의 단독으로 쓴 것이 아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더욱더 창조주 하나님은 성경 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 그전에도, 그 후에도 계셨으며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 소설에서 말해주고 있다.
그녀의 인생은 사십 년으로 끝을 맺는가?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인생 또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마흔 살이 될 때에 어느 정도 인생은 무르익는 나이라고 말을 많이 한다. 링컨도 인간의 나이가 사십이면 그 얼굴에서 이미 모든 인생을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 어느 지식인은 인생의 사십 때에 제2의 사춘기가 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나이 사십이 되면, 그 인생은 어느 정도 형성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인간성이 사십 나이에 굳어져서 더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성경에서도 사십에 대한 의미를 주는 부분들이 많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이 사십 년이다. 또한 예수는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에 광야에서 사십 일간 금식생활을 했다. 또 노아의 홍수에서도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에서 물이 줄어들면서 산봉우리가 보였을 때에, 노아는 그때부터 사십일을 지나서 방주의 창문을 열고 바깥세상을 살폈다고 한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사십 세에 장가를 들었다. 그리고 모세가 사십일 주야를 산에 머물렀다고 했다. 여기서 사십의 숫자적 의미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 될 수가 있겠다.
또한 식물의 번식과정에 있어서도 40년은 식물의 번식패턴이나 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데에서도 필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여성의 생리주기는 표준 28일이며, 임신기간은 40주, 즉 280일로 계산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창조주의 섭리에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그녀의 인생이 사십 년이라 함에는 한 영혼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세월에는 사십 년이면, 그 인생은 충분하다고 하는 것은 일깨우고자 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즉 인생 사십 년에 인간의 삶은 거의 완성되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어떤 지식이나 경험이 그 인생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 없는 인간성을 갖추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마지막 겨울을 맞이하면서 그녀만의 인지하고 있는 세상, 사계절에서 오는 그녀만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그래서 지식인들이 자주 하는 말인, 본다고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이 아니며, 본 대로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세계에서 더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음은 그녀에게 항상 진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의 세계는 오직 진실의 눈으로만 보고 깨달을 수 있다고 그녀를 통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참다운 인생」이란 진실함의 바탕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