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God declared the day holy]
1. So the creation of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everything in them was completed. 2. On the seventh day, having finished his task,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3.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declared it holy, because it was the day when he rested from his work of creation.
------------------- Bible Story -----------------
[직역]
1. 이렇게 천지창조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2. 일곱째 날에, 그의 일이 마쳤으므로,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로부터 쉬셨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고 그날을 거룩하게 선언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창조의 일로부터 쉬셨던 날이기 때문이다.
[知考知思]
"하나님께서 이날을 거룩하게 하셨다."[God declared the day holy.]
참으로 놀라운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어찌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하셨을까?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당연히 일을 한 후에는 쉬어야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깨닫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이 그냥 심심풀이로, 마술사처럼 쉽게 행하신 것이 아님을 인간에게 깨우치심이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진실로 피조세계에서도 수고함으로 인해 오는 기쁨을 누리게 하심이신 것을 깨닫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그리 말하지 않나? ‘이제 그만 쉬고 싶어!’, ‘좀 편하게 살 수 없을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그런 마음이 들게 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자문해 보기도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에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던 시절에는, 늦은 밤에, 남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도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는 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다 그렸다고 했을 때에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었다. 그때서야 좀 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가야 했었던 때가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물론 명작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그린 그림이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마음이 즐겁고, 보람되고, 뭔 가득함을 느꼈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하신 말씀, ‘보기 좋았다.’는 마음을 표현하신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런 마음이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내가 하고 싶어서 했는데, 한 후에 마음에 쏙 들면, ‘굿!’(It's good!)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꼭 이런 마음을 표현하셨구나 함을 깨닫게 된다. 왜 그리 하셨을까?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창작의 기쁨을 공감하라고 하신 듯하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가깝게 느껴지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창조하시는 과정을 정하심에도 놀라운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왜? 하나님은 단번에 순간에 천지창조를 하시지 아니하시고, 귀찮게시래,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하여 일곱째 날에 쉬었다고 했을까? 오히려 다른 신들(인간이 창조해 낸 신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순간에, 찰나에, 나타내려고 하지 않겠는가? 마치 마술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기대하며 다음은?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을 점점 깊이 알아갈 때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심에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시고 내 곁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번쩍 주시는 진리의 말씀, 사실 다른 성도들은 성령을 달라고, 방언하게 해달라고, 그러했을 때에, 나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감동을 받고 나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성경과 일반 기독교 서적들을 찾아가며 독서를 했었다. 그중에 깨달은 것을 조금씩 다른 글에, 동화와 소설에도 써넣었던 것이었다.
한 예를 들면,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들이, 부모나 상사나 고위 계층에 인간들이 얼마나 다른 인간에게 강요하고 지배하려 하며 인간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않는가? 특히 한국 사회는 이씨조선의 오백 년에 길들여진 의식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가? 특히 ‘돌’이란 자는 자신의 지식은 없으면서 남의 지식으로 이리저리 해석하면서 인간들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즐거워하지 않는가?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는 ‘토론(討論), 토의(討議)’이란 어려운 면이 크다. 조선의 계층사회, 신분사회 등이 여전히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고, 또는 기피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크다. 또한 한국말속에는 유일하게도 신분을 밝히도록 하는 존댓말과 낮춤말이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 인간에게 특별히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절대로 이 의지를 강압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한글성경에서 보면, 상당히 조선의 어법으로써 높임말이 상당히 많이 있다. 즉, ‘가라사대’, ‘말씀하시니’, ‘하셨느니라’, 등등........ 그래서 젊은이들은 성경을 읽기가 매우 불편해한다. 그러나 영문 성경이나 일본 성경이나 다른 언어의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고,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나님도 자신을 높여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평등하게 대해주기를 바라신다.(여기서도 저절로 ‘바라신다’라고 쓰게 되네요.)
그 좋은 예를 찾아보면, “어린아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예수가 제자들이 오는 아이들을 막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라. 그들을 막지 말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아이들과 같은 사람의 것이다.」(마가 10:14)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이다.」(누가 18:16)
이 말씀을 얼마나 이해할까? 여기에 추가로 말한다면, 인간에게 원죄를 강조하는데, 아주 비겁한 의식이다. 만일 태어난 아기에게 원죄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것이 되며, 상실되어 버린 셈이 된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까지 제거하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알까? 갓 태어난 아기들은, 아니 세상물이 들기 전에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물론 배고파 우는 것과 먹을 것을 찾으려는 행동에는 피조물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즉 배운 것이 없는데도 아주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이다. 그 예를 들면, 아기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 어린이들이 자리에서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모습, 등등.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한가? 이 지혜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인 것이다.
자, 이제 하나님은 6일 동안에 천지를, 그곳에 있을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 7일째 되는 날에 쉬었다고 표현하면서,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 이유를 아는가?
여기서 ‘거룩하다’의 의미를 세상 사람들은, 특히 인본주의적인 인간들은 인격의 품위, 지위, 권위 등으로 표현을 한다. 그래서 존엄한 왕이니, 거룩하신 분이시니, 존귀한 분이시니, 존경받을 분이시니, 등등을 겸해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인간을 하찮게 여기거나, 업신여기거나, 차별하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아담의 죄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원죄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하물며 의인이나 죄인이나,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똑같이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보라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에 그를 벌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그가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 일곱 배의 복수를 당하게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이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칠일 째 날에 쉬셨다고 하였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심에는 위엄 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또는 성스럽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날로 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일들이 선하고 진실하고 의로움인 것을 나타내신 것이며, 그리고 반드시 창조되었음을 확실하게 하심도(진화론자들이 부정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창조된 피조세계에도 반드시 쉼(rest)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사람이 6일간 일하고 7일째에는 쉬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피조세계에는 특히 생명이 있는 것들은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활동(일)이 있으며, 그리고 쉼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심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날, 일곱째 날에 회복의 기간, 시간을 주심이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인류의 끝이 있음을, 그리고 거룩한 날이 있음을, 이미 아담이 언약을 파괴하고 에덴동산을 떠날 것을 아신 하나님은 인간세상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 끝에는 천국(하늘나라)을 준비해 두신 것이다.
여기 창세기 2장에서는 놀랍게도 천지창조의 순서가 바뀌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의미를 인간들에게 재설명을 해줌으로써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서두에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과 마지막 날을 거룩하게 하심에 큰 비중을 두었으며,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오늘도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