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생각]
신경정신과 의사 타츠 W. 킨나는 여자보다 남자 쪽이 알코올 중독자가 세배 가량 많은 것은 그만큼 자주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남자들은 소년시절부터 눈물을 흘리면 사나이가 될 수 없다고 배웁니다. 남자 담기 위해서는 큰 눈물도, 분노도, 모두 참아내야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술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선물입니다. 눈물샘은 우리의 인생을 소중히 지켜줄 수 있는 신체조직 속에 내장된 안전관입니다. 그것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것이 부끄러울 까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개인에게 일어나는 회개의 역사와 그 뒤에 오는 진정한 감사와 기쁨에서 얻어지는 값진 눈물의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후 다른 영혼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 보았다면, 눈물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선물임을 알 것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 읽는 책/ 김인경 지음>
그렇습니다. 고달픈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눈물은 모든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일 눈물이 없거나 메말랐다면,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가 또는 얼마나 한이 많았으면 하고 말합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눈물은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합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도 감동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해도 진실한 눈물에는 눈 녹듯이 용서를 받게 됩니다.
눈물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에 극한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눈물은 깊은 영혼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눈물은 깊은 영혼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눈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또 눈물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구원하도록 감동을 주게 합니다.
[재사고(再思考)]
사람이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그리 생각하실 것입니다. 특히 사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축복인 것입니다.
자주 산을 오르는 소인으로서는 산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에서 신비한 감정을 느끼곤 하였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어서, 즉 애절한 마음으로 들으면 슬프게 느껴집니다. 또는 환희의 마음으로 들으면 기쁨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에는 그들이 스스로 내는 소리인 듯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놀라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시(豫示)인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놀라운 예시적인 소리조차도 그들이 스스로 내는 소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과 오랜 친구가 되면 그들의 소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울음소리라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쩍새가 울 때에, ‘소쩍소쩍’ 하고 울면 흉년이 온다고 말하고,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울면 풍년이 온다고들 말합니다. 또는 까치가 새벽에 울면 손님이 찾아온다고 하여 길조로 해석하고, 반대로 저녁에 울면 불긴 한 징조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동물들의 울음소리로 사람들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동물들의 소리에는 자신이 존재감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즉 다양한 그들의 소리에는 자연의 조화(調和)를 이루게 합니다. 이를 바라본 창조주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보기 좋았더라!”[It's a good!]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보기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다양한 동물들은 노래를 한다고 말해야 할까요? 그러나 인간만은 그렇지 못하지요. 오히려 억울한 일이 있을 때에만 하늘을 쳐다본다고 하잖아요?
그러하겠지요. 아담이 에덴동산에 있을 때에 선악의 열매를 먹은 후, 인간은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하니깐. 거기에다, 뱀이 말했듯이, 먹은 후에는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인간들은 교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어, 서로 판단하고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악을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고통을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 하였을 때에는,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기를 위한 목적으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사회에서는, 인류역사에 보여준 인간의 모습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자연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담이 품었던 마음, 신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함인 것입니다.
그러하니, 인간에게는 서로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고 하면서 애통할 일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란 말이 있는 것이다. 이는 인생이 길흉화복, 좋고 나쁜 일로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었지, 인간을 다스리라고 하지 않았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이성을,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것은 죄악인 것이다. 인간의 불행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 개인의 자유를 빼앗거나 간섭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인격이란 것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격(人格)이란 개인의 가치, 즉 존중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신다는 것을, 인간의 자유의지를 간섭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가치, 즉 인격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담의 첫아들인, 가인에게서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습은, 가인의 마음속에 품은 것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그러나 결국 가인은 아우를 죽이고 말았다. 이러한 악한 마음은 그 후에도 인간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비극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세상사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인간들은 애통함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이러한 일들을 아셨기에 인간에게 위로의 힘이 될 수 있는 눈물의 장치를 장착해 두신 것이다. 그 외에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서는, 인간을 포함해서 동식물에게도 상처를 입었을 때에나 당했을 때에 회복하는 능력을 주셨다. 노아 홍수 이후에 자연만물에서도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자연이 회복되도록 해두셨던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눈물이 없는 편이다. 극히 일부, 즉 소가 도살장에 갈 때에 눈물을 흘린다고 도살장이 말한 적이 있었다. 가축에게는 그럴 수 있겠다. 인간과 교류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한 예를 들면, 도마 위에 올라온 살아있는 생선이 고통을 느끼거나 눈물을 흘린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함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노아에게 육식을 허락하실 때에 동물들은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은 동물들이 인간에 대해 경계한다는 것은, 여기서 경계심이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이유는 동물들은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동화에 대해서 잠깐 말한다면, 어린아이들에게 동물과 친화적 관계를 주기 위해서인지, 동물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동화가 어린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까? 엄청난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알까? 즉 어린 마음에 인간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동물에 의지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AI의 로봇을 생산하게 되는 시점에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도 알까? 즉 이제는 동물이 아니라 기계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까?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까? 인격은 사라지고 비생명체화(非生命體化)로 가게 되고, 유물론적 사상이 더 심화되게 된다는 사실을 알까? 이러한 것이 얼마나 사악한 것임을 알까? 즉 이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적인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까? 이때에는 인간에게 있는 눈물마저 앗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찌 하나님을 알겠는가? 진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있는 눈물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달았으리라고 본다. 모든 생물들 중에, 유난히 인간에게만은 눈물이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의 인격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눈물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도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눈물이 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것처럼 인식시키는 행위는 인본주의적인 사고에서 온 것이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못난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남자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눈물에 대해서 억제하다 보니, 역작용으로 난폭한 행동이나 포악한 성격이 형성되어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까?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남자의 특권의식에는 여성학대로 옮겨지고, 약자에 대한 폭력은 그들의 돌파구(突破口)인 셈인 것이다. 이처럼 눈물은 인간에게만 있는 매우 놀라운 생리적인 현상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에게 접근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눈물이 메말랐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인격이 손상되어 버렸다는 것인 셈이다. 얼마나 비극인 것일까? 그렇게 되도록 방치했다면, 그러한 사회나 가정은 이미 어둠이 깊어져서 회복할 능력마저 사라진 셈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생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만 있는 눈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알기를 바란다. 아니 인간에게만 주어진 눈물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지녔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눈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슬퍼서도 울고, 기뻐서도 울고, 괴로워서도 울고, 즐거워도 울고, 반가워서 울고, 그리워서 울고, 아파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 보람된 일로 울고, 사랑하기에 울고, 미워도 울고, 등등 참 눈물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진실을 나타내는 눈물도 하나님을 감동시킨다. 그 외에도 눈물의 생물학적인 원인도 있다. 눈 안에 무엇인가 들어갔을 때에도 눈물로 내보낸다. 그뿐이겠는가? 눈에는 끝없이 눈물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건조해져서 시력을 잃거나 상처가 나고 해서 눈병이 발생하고 만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마른다고 하지 않는가? 왜 그럴까? 노화현상이라고 의사들은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늙어갈수록 눈물이 많아진다고들 말한다. 왜 그럴까? 점점 상실되어 가는 관계에서나, 또는 그리운 사람들로 인해서나, 또는 지나간 과거의 일들로 인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늙어지면서 눈물이 마른다는 것에는 한이 많거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늙어갈수록 과거의 일들이 생각나거나 기억나게 되는 이유를 아는가? 특히 잘못한 일들이 더욱 많이 생각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축복인 것이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로 반성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훗날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 날에도 그러하게 될 것이다. 증인이 필요하거나 과거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거나 말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처럼 인간에게 있었던 모든 것이나,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이유를 말해주고자 한다. 유일하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담이 선악의 열매를 먹게 된 것은 여자 때문도 아니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에 따라 선악의 결과를 만들어 냈어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인간의 눈물에서 깨닫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눈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눈물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눈물이 없는 사랑? 눈물이 없는 진실? 눈물이 없는 인생? 거기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인간의 눈물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에게는 위로가 있을 것이다.」(마태 5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