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엽서의 글.. 손녀가 있기에 서점에 들렀다가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이 내 눈에 꽉 찼다. 엄청 공감을 갖고 읽어갈 때에, 내게 위로가 되었다. '고통' 단어는 누구나 외면하고 싶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의미를 준다. 나의 첫 고통을 생각하면, 8살 때에 동네에서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놀이를 할 때였다. 그때만 해도.. 1957년도였으니.. 자동차가 거의 없던 때였다. 술래에 손에 잡힌 친구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때 마지막 한 명이 남아서 술래가 모르게 다가와 친구 줄을 손으로 치자 모두 도망갈 때었다. 제일 먼저 앞서 도망가던 친구가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치어 즉사했다. 그때에 차바퀴에 깔려 죽은 친구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 그 모습을 잊지를 못한다. 왜 잊지 못할까? 그곳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이웃들이 고통에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 시대를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웃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서 해외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물론 세월호 참사가 그랬었다. 전 세계인들이 고통을 함께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을 정치적 수단으로, 어떤 이념의 미끼로 악용된다고 생각할 땐 고통에 고통을 낳고, 그 고통은 목적이 되어감을 보면... 고통에 대한 부정적 고통이 되어 고통에 찬물을 끼 얻는 일이 된다고 생각할 때에도 고통은 안식으로부터 멀어지고 탐욕과 분노의 밑거름이 되고 만다. 그렇잖아도 인간은 점점 사악해져 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