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섬 소녀 이야기]
어두운 밤이지만 방안에는 대낮처럼 환했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소년도 할머니 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밤 12시가 되니 텔레비전에서 애국가의 노래가 울려 나왔다. 그리고 방송이 모두 끝났다. 할머니는 잠자리를 펴시고 누우셨다. 소녀는 할머니 품에 들어가 누었다가 일어나 할머니 방의 등을 끄고 자신의 방으로 왔다. 소녀는 소등을 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창문 밖으로 등대의 불빛이 지나가는 것을 소녀는 보았다. 그리고 소녀는 생각을 했다. 등대가 있기 전에는 창밖이 고요했었다. 이제는 등대의 빛이 고요를 깨우는 것 같다고 소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에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오더니 소녀에게 말을 했다.
“어때? 방안에 등불이 달빛보다 더 밝지? 이제 우리는 멀어지게 될 거야.”
“무슨 소리야! 그렇지 않아. 너는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라니깐.”
사실 그렇다. 그동안 소녀의 잠자리에는 달이 옆에 있어주었다. 달은 창문을 통해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도 몸을 창문 쪽으로 돌려 달을 바라보았다.
“오늘 좋은 이야기를 해줘~”
“좋은 이야기? 일전에 얘기했었지. 언어가 많아지게 된 이유 말이야.”
“응,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 언어가 달라져서 흩어지게 된 이야기.”
“그렇지. 이제 너도 그 세상을 자세히 알게 될 거야.”
“어떻게? 내가 여기를 떠나게 돼?”
“아니, 너에게 선물이 하나 올 거야. 곧 넌 알게 될 거야.”
소녀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깊은 밤이 흐르고 새 아침이 찾아왔다. 요즘 소녀는 일찍 일어나기보다 자주 날이 밝은 뒤에 깨어나곤 하였다. 깨어난 소녀는 마루로 가서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이 아침 7시였다. 이때 소녀가 엘리자에게 전화를 했을 때에 미국은 오후 5시였다. 마침 스미스와 엘리자가 집에 있었다.
“하이, 안녕하세요. 여긴 날씨가 좋아요.”
“하이, 금소라 양, 반가워요. 이제 일어났군요. 이렇게 서로 자주 통화하니 너무 좋아요.”
“저~”
“말해요. 무슨 말이든 다 들어줄게요.”
“마더,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 오케이?”
“오케 오케이, 여보 허니~ 금소라가 나보고 마더라고 해!”
엘리자는 흥분되어 목소리로 통화 중에 스미스를 불렀다. 욕실에서 몸도 제대로 씻지 못한 채 스미스는 달려왔다. 그리고 엘리자의 손에 있는 수화기를 빼었다.
“오, 금소라 양! 땡큐! 땡큐!”
엘리자는 스미스에게서 수화기를 다시 뺏어 들어 말했다.
“정말 고마워~ 우린 오랫동안 외로웠단다. 너도 이해하지?”
“예, 알아요. 저도 두 분을 알게 되면서 엄마 없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어요.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기다리는 즐거움이 많았어요.”
“그래, 우리도 그랬단다. 너의 편지를 기다림이 큰 기쁨이었어.”
“그런데 이렇게 자주 통화를 하면서 직접 음성을 들으니 꼭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우린 가족인 셈이야. 나도 늘 너를 딸처럼 생각했단다. 정말 고마워~”
“그러면 제 이름을 지어주세요? 영어 이름으로요.”
“그래요, 아주 예쁜 이름으로 스미스와 상의해서 알려줄게. 너무 보고 싶다.”
“저도요. 마더!”
소녀는 통화를 마치고 할머니께 갔다. 할머니는 이미 소녀의 통화내용을 듣고 있었다. 할머니는 딸을 잃은 슬픔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딸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손녀가 마음을 열게 되어 한편으로는 기뻤다. 소녀는 할머니께 자신의 마음을 잘 설명해 드렸다. 할머니도 쾌히 승낙하여 소녀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소녀는 집을 나왔다. 곧바로 해변으로 달려갔다. 해변에 이르자 소녀는 바다를 향에 큰소리로 외쳤다.
“야~ 나도 엄마와 아빠가 생겼어! 너희들 알고 있었지.”
바다의 파도 소리가 더욱 우렁차게 들렸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소녀의 발등을 쓸어주었다. 소녀는 발이 시리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때에 소녀의 주머니에서 웅~ 하고 소리가 났다. 소녀는 바로 주머니에서 소라 집을 꺼내어 귀에 댔다.
“그래, 넌 뭔 말을 하고 싶어?”
“나를 빼면 안 되지. 너의 엄마의 손길이 있는 나야~”
“그래, 뭘 말하고 싶은 거니?”
“네 엄마도 네가 펜팔 하는 걸 알고 계셨어.”
“내가 펜팔 하는 걸 아셔?”
“그럼, 무슨 내용인지도 알고 계셨지. 언젠가는 미국인 부부가 널 데려다 키워주길 기도하셨지.”
“우리 엄마가? 아~ 엄마!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소녀는 그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소라 집도 덩달아 웅~ 웅 하며 울었다. 이때에 갈매기들이 몰려와 소녀의 주변을 싸고돌았다. 소녀가 울음을 멈추자 갈매기들이 모래사장에 내려앉았다. 소녀도 모래사장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해가 조금씩 소녀에게로 다가왔다. 바위산 기슭에 달도 머무르고 있었다. 소녀는 이들을 둘러보면서 손으로 콕콕 짚어가면서 말했다.
“너희들도 내 가족이야.”
“친구라면서……. 이젠 가족인 거야?”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친구나 가족이나 그게 그거지. 뭔 잔소리야.”
집 앞에 도착한 소녀는 집 주변에 있는 태양광 전봇대를 만져보고는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등대를 보려고 뒷걸음을 쳤다. 등대가 보이자 소녀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때에 할머니가 마당으로 나와서 소녀를 손짓으로 불렀다. 소녀는 할머니를 보자 손을 흔들며 할머니께로 달려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녀는 할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하고 방안 청소까지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며 마당을 쓸었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와 있었다. 할머니는 방에 들어가셔서 텔레비전을 보셨다. 소녀는 집을 나와 해변을 따라 걸으며 엄마 동굴로 갔다. 동굴에 이른 소녀는 책상 위에 엄마의 일기를 보던 일기장을 폈다. 그리고 엄마가 들으라고 소리 내어 읽었다.
“오늘은 날씨가 쌀쌀하다. 이제 곧 겨울이 오려나보다. 오늘은 아버지를 따라가야겠다. 육지에 가서 기름을 많이 사놓아야겠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도록 월동준비도 미리 해 놓아야겠어. 그래, 어머니도 겨울은 좀 한가하시니 오순도순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가져야지. 이번 겨울에는 꼭 검정고시 준비를 해야겠어. 내년에는 대학에 가야 하니깐. 주님! 은혜를 베푸소서. 내년에는 꼭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건강도 지켜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녀는 엄마의 일기장을 펼쳐있는 그대로 들고 멍하니 동굴 속 벽을 향에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대학에 갔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나도 가야 하나 하고 소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럼 할머니는 홀로 이 소라 섬에 계셔야 하는데……. 아냐, 난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소녀는 엄마의 일기장을 덮고 책상 위에 그대로 뒀다. 그리고 동굴 입구로 와 앉았다. 멀리 바다 위에 구름들을 쳐다보면서 소녀는 끝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해가 바위산 위를 넘어가자 소녀는 동굴을 나왔다. 그리고 문뜩 토끼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소녀는 다른 길로 내려왔다. 일전에 먹이 주었던 토끼의 굴을 살폈다. 굴속을 들여다보다가 소녀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토끼가 새끼를 낳았네. 곧 추워질 텐데…….”
주변을 살펴본 소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소녀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할머니 옆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할머니께 말했다.
“할머니, 바위산에서 내려오다가 토끼 굴을 살폈더니 새끼들이 있어요. 어떡하죠?”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썼다.
“괜찮다. 겨울을 잘 지낼 거야. 먹이를 갖다 주렴. 새끼들이 잘 크게.”
소녀는 알았다는 듯이 다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자 다시 할머니께 말했다.
“할머니, 만약에 내가 육지로 가게 되면 혼자 지낼 수 있어?”
“혼자? 그러지 뭐.”
“외롭지 않아? 할머니 혼자 있으면 난 불안해서 잠이 안 올 것 같아.”
“그럼, 같이 갈까?”
“그래, 그게 좋겠다.”
“왜 갑자기 육지로 가려고 하지?”
“엄마도 대학에 갔잖아, 나도 대학에 가야 하잖아?”
“그렇겠구나. 너의 엄마도 너처럼 말했지.”
“나처럼? 그랬어?”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참 말이 없던 소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할머니, 난 육지로 안 갈 거야. 다른 길이 있을 거야.”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도 딸이 그랬던 것이 생각이 났다. 딸도 어머니를 혼자 두고 육지로 안 간다고 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딸은 육지로 떠났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할머니는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