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나는 아이들이 몰려 있는 곳에 서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 아이가 오더니, 내게 양초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다른 초에서 내 초로 불이 옮겨 붙었고, 마침내 그 ㅏ리에 서 있던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빛에 비췬 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순간 놀랍고도 평화로우며 치유의 힘이 담긴 침묵이 군중들 사이로 감돌았다. 바로 그때 한 여자 아이가 내게 와서 물었다.
"안아 주실래요?"
두 팔로 아이를 감싸 안자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곳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울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아픔과 내 곁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아픔이 느껴졌으며, 어떻게든 내가 위로를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첫 번째 아이가 가고 나자 그 다음 학생, 또 다음 학생이 내게 와 안아달라고 했다. 지금 집에서 내 아이들을 안아 줄 수 없지만, 이 아이들은 분명 안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일이라고 느껴졌다. 기자로서나 엄마로서나, 정말로 고단한 하루였다. 그러나 결국 이 학생들과 교감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을 통해 위안을 찾았다. 치유는 바로 이런 작은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가이드포스트 2007년 9월호에서)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32 명의 학생들이 동료 학생에게 살해 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물결이 이 아픔을 치유해 주었다. 그것은 '용서'와 '긍휼'이었다. 세계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말이다. 하나의 촛불이 수백이 되듯 작은 순간의 사랑의 물결이 안아주는 곳에서 치유의 기적을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누구나 조금만 마음을 열고 아픈 상처와 함께 해줄 때에 용서와 긍휼은 물결치듯이 일어나 아픔 이들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치유함을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가슴아픈 일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세히 보도되고 있는 여객선이 침몰되어지는 현장을... 온 인류가 애통해 하며 애절함으로 손에 땀을 움켜지고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바라보았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온 인류가 아파했던 그곳에서는 용서와 긍휼은 없었다. 오로지 분노와 증오의 물결이 수년, 수 십년을 요동치며 아직도 그치지않았다. 수 많은 보상을 요구하며, 진상을 밝혀라 외치는 유족들 보다 더 열열하는 군중들에서 독사의 눈을 보았다. 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바다속에 잠겨 겨 흔적도 없이 찾을 수도 없는 희생된 젊은이들....그리고 그 영혼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서 구천을 떠도는 것은 아닌지 또다시 울컥하며 눈물을 쏟는다. 왜, 여기에는 용서와 긍휼이 없는 걸까? 아직도 희생된 이들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번 고통을 당하는 영영들을 생각하면 한없는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