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그렇지만 20세기 초반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나 2차 대전 중의 유대인 학살을 생각해 보면 역사 속에서 그런 집단 간 폭력이 적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철천지원수가 되어 서로에게 엄청난 잔혹행위를 하는 현상은 정말 안타깝고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인종이나 종교를 통해 ‘우리’라는 의식으로 함께 묶이게 되면 곧바로 다른 사람을 몰아내는 경계선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가 아닌 ‘그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가 ‘그들’을 동물처럼 마음대로 죽이고 고통을 주는 것이 당연시된다. 서로 차를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서로를 악마처럼 여기고 이웃집 딸을 겁탈하고, 이웃집 아들의 손을 자르는 게 정상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길들이기 매우 쉽고 암시에 빠지기 쉬운 동물이다.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앨런 맥팔레인 지음>
‘우리’라는 말은 아름다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우리 속에 숨어있는 벽이 있음을 알고 놀랍다. ‘너’ 아니면 ‘나’라는 이기적인 표현에서 우리는 복수로써 이기적이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의식 속에 집단 이기심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다. 즉 범죄 집단화가 되기 쉽다는 의미가 아닌가? 폭력배, 국제범죄, 국제 테러 등도 우리의 집단의식에서 발생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비기독교적인 의미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셈이 아닌가?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이 이러한 우리 집단에서 자행된 범죄의 정당성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유대인의 대학살, 대원군에 의한 천주교 핍박, 정도전의 불교 핍박, 하물며 북한의 인민재판, 또한 한국전쟁 중에 있었던 인민재판 등에서도 역시 우리 집단의 이념적 정당성이 준 잔인한 범죄를 가능케 한 것이다.
‘우리’, ‘우리끼리’, ‘우리 민족’, ‘우리나라’, ‘우리 편’ 등등에는 겉보기에는 참 좋은 의미를 주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 의식 속에는 잠재적 악함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간의 속성은 선과 악을 다 품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무서운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보다는 집단화되었을 때에는 엄청난 악을 생산하고 실천하도록 강요성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