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되풀이해온 질문이 있다. 우리의 삶의 정수는 무엇일까? 당신 앞에, 오직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에서, 우리가 추구할 가장 고귀한 목표는 무엇이고, 갈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수는 무엇일까? 종교에서는 믿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이 위대한 단어는 수세기 동안 종교의 핵심이었고, 우리는 별 의심 없이 믿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그렇게 말해왔다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보자.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기독교의 근원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바울은 바로 그전에 믿음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고 언급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그러나 그는 믿음과 사랑을 비교하며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결론을 맺는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흐르는 강물처럼/파울로 코엘료 지음>
예수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 17:20)”라고 말씀하였다. 이처럼 믿음은 중요했다. 중세시대에 기독교는 이런 믿음을 검증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 모두가 삶의 가치를 믿음에 둔 연고일 것이다. 하지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예수는 자신으로 사랑을 보여주셨다. 즉 믿음이 삶의 정수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이란,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의지인 것이다. 국가의 기본인 가정에서도 믿음은 부모의 사랑 안에서 형성되었다. 국가란 거대한 인간 집단에서도 믿음은 애국이란 신념, 사상,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종교에서도 믿음은 각 종교의 이념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각종 인간의 집단이나 조직에는 정수와 같은 개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믿음 자체가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나 종교에 있어서 고유한 본질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단지 믿음은 어떤 것을 위해 지속케 하는 역할이나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믿음은 진리가 아니다. 믿음은 진리를 깨닫는 자의 현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삶의 정수라기보다는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진리이다. 생명을 소생케 하고, 생명을 지속케 하고, 생명에의 근원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정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