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일치가 단지 교육이나 농구시합에서 우승하는 것과 같은 기능적 목표를 염두에 둔 일치가 아니라 인간 간의 진정한 일치를 의미한다면, 그 일치 안에서는 각각의 구성원이 바로 개개의 인격으로서 구분됩니다.
그 일치는 인격화 된 일치입니다. 과연 무엇이 인간과 인간을 인격적으로 일치시킵니까? 어떠한 양상이거나 간에 그것은 분명 사랑일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이 모든 것은 사랑을 통해 사랑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일치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사랑의 일치는 일치를 이루는 각 사람을 인격화 합니다.
<관상과 식별/ 로버트 훼리시 지음>
그렇습니다. 서로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는 관계는 많은 갈등과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인생사가 비극이라는 말은 인간의 관계가 잘못되어서 오는 현상인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합니다.
일치란 수학적인 합집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에 인간관계에 일치를 이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든지, 가족들에든지, 친구지간에든지, 일치란 서로 인격을 존중하는 인격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많은 대중적인 의식에서는 동물적, 사물적인 관계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이해하고 인식하려고 합니다. 특히 유행하는 의식에 따라 일반인들은 행동을 합니다. 동물과 사물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엄연히 다릅니다. 동물과 사물에 대한 애정은 사랑이 아닙니다. 동물과 동물이 사랑한다고 동물의 왕국에서도 그런 표현을 서슴없이 말합니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을 생산하고 유행으로 번지면서 마치 그것이 사랑인 줄로 알고 그대로 사람에게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고 심할 때에는 폭력을 사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용어나, 의미는 사람들의 관계에서만이 허용된 유일한 것입니다. 이는 창조자의 뜻입니다. 인간을 창조할 때에 다른 동물과 다르게 창조하였습니다. 사물이나 동물들은 현존의 가치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현존의 가치를 넘어서 영원한 가치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은 창조자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의 그림자가 바로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 간에 사랑인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랑은 여러 종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은 하나이면서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나타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바로 깨달아 알 때에 참 사랑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아는 길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아기가 세상을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같은 또래에서나 함께 사는 이웃에게서 친구로서 사랑을 배워갑니다. 즉 참다운 사랑을 실천하면서 인간관계에 일치된 관계로 튼튼하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일치된 관계를 원하십니다. 친히 자신이 인간의 세계에 오셔서 사랑으로 일치를 보이셨습니다. 그 예로써, 스승을 배반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음식을 함께 나누시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베드로라 부르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 번씩이나 물었습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이 땅에서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로써 예수님과 베드로(요한의 아들 시몬)의 관계는 일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 간에도 참다운 사랑으로 일치된 관계를 맺어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첫째는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지간에도 사랑을 실천함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