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이 나갔다.

[안데르센 동화 - 창작 편]

by trustwons

넋이 나갔다


가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니 나무들의 잎들을 저마다 먼저 가겠다고 우르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동찬이는 점잖게 걸음을 걷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학교를 일찍 끝나는 날에는 신바람이 나서 깡충깡충 뛰듯이 걸었을 것이다. 오늘은 동찬이가 오전반이었나 보다 점심때가 된 시간에 집으로 가고 있었다. 동찬이는 혼자서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네 이놈! 넋이 나가도 한참 나갔구나.”


동찬이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준 조선시대에 대한 영화를 보고는 한 대사를 따라 하고 있었다. 양반집 하인이 주인 영감의 심부름으로 장터에 갔다 왔는데, 하인은 주인 영감님의 심부름을 까먹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멋진 지팡이 하나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러자 주인 영감은 하인에게 호통을 쳤다. 사실은 안주인에게 주려고 머리빗을 사 오라고 했었던 것이었다.

수양버들 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 위에 앉아서 긴 담뱃대를 물고 계시던 맴 할아버지가 점잖게 걸어가는 동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큰 소리로 동찬이를 불렀다.


“어흠, 똥찬아~ 이리오너라~”


동찬이는 점잖게 걷다가 맴 할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맴 할아버지를 향해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긴 담뱃대로 동찬이를 가리키면서 오라고 했다. 동찬이는 빠른 걸음으로 맴 할아버지께 왔다.


“똥찬아! 넌 늙었냐? 뭔 걸음이 노인처럼 걸어~”

“네? 네 나이가 몇 살인데요? 저도 어른 나이로 말할 거 같으면 사십대예요.”

“뭔 사십 대야~”


할아버지는 긴 담뱃대로 동찬이 머리를 톡 하고 쳤다. 그러자 동찬이는 손을 머리에 대고는 눈을 크게 뜨고는 말했다.


“할아버진 잘 몰라~ 제가 4학년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깐 사십대죠.”

“뭐? 4학년이면 사십대라고……. 허허~”

“우리들은 그렇게 말해요. 우리도 알건 다 알아요.”

“뭘 아는데?”


동찬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손으로 뒤통수를 끌쩍이고 있었다. 그러자 맴 할아버지는 옆에 와 앉으라고 하셨다. 동찬이는 맴 할아버지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할아버지, 넋이 나가도 한참 나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게 궁금하냐?”

“네, 뭔 소리죠?”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렴.”

“네, 네.”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그러니깐 조선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지.”

“그래서요.”

“산골에 외롭게 한 초가집이 있었단다. 그 집에는 두 부부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지. 아들의 이름은 참돌이라 부른단다.”

“왜 참돌이예요? 성은 뭐예요?”

“성은 없지, 참돌이란 너만은 흔한 돌이 되지 말라는 뜻으로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지. 그러니깐 부부는 원래 양반집에 머슴들이었지. 그런데 도망을 나와서 깊은 산골에 숨어서 살고 있었지.”

“왜 도망을 나왔어요?”

“사연이 길지.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천민으로 나누어져 있었단다. 양반들은 이름 앞에 성을 붙이므로 가문을 나타내지만, 천민들은 이름 앞에 성이 없단다. 그저 이름뿐이지.”

“이름 앞에 성이 없는데 어때서요? 우리 엄마는 맨 날 내 이름만 부르던데요.”

“예를 들면, 개와 돼지, 소, 닭에 사람들이 이름을 붙이지?”

“네, 그래야 구별을 하잖아요?”

“그렇지, 천민들에게도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런 뜻이지. 양반집에 하인들도 천민에 하나일 뿐이란다. 그래서 참돌이네 부모도 성이 없지.”

“그런데 왜 도망 나왔어요?”

“그러니깐, 이런 이야기지. 양반네 집에 경사가 나면 큰 잔치를 베푼단다. 그러면 많은 양반들이 참석을 하게 되거든. 특히 주인 양반의 생신날에는 더욱 크게 잔치를 베풀었지. 그것이 양반들의 자랑거리야. 얼마나 거대하게 잔치를 하느냐에 따라 서로 위세를 내세우거든.”

“위세요? 위세가 뭐예요?”

“그러니깐 권세, 힘 있는 집안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거지. 그때에 재미난 놀이가 있었단다.”

“무슨 놀이요?”

“그러니깐, 넌 알지? 로마시대에 노예들의 결투 놀이?”

“알아요!”

“그런 거지. 잔치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주인 양반은 집안의 하인들 중에 한 명을 지명해서 마당에 말뚝을 세워놓고 거기에 묶어놓고는 다른 하인들에게 매질을 하게 하는 거야.”

“개 패듯이요?”

“그렇지, 말뚝에 묶어놓고 개 패듯이 돌아가며 패는 거지. 그때에 옆에서는 매수를 세는 거야. 그럴 때에 양반들은 몇 대에 기절을 할까를 내기하는 거지. 이런 유래는 중국의 옛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온 거지. 넌 알지?”

“네, 전에 얘기해주었어요.”

“이런 모습을 본 두 부부는 기겁을 한 거지. 결국엔 참돌의 할아버지가 뽑힌 거지. 그리고 주인 양반이 사전에 몰래 약속을 해주었거든.”

“뭐라고요?”

“네가 만일 천 번을 넘기면 너를 하인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참돌의 할아버지는 끝까지 버틴 거지. 그렇지만 잔치가 끝나고 참돌이네는 하인에서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날 밤에 참돌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단다. 그때는 아직 두 부부에게는 참돌이라는 아이가 없었을 때였지. 두 부부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가마니로 싸서 지게에 지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산으로 깊숙이 들어왔단다. 그리고 초가집을 짓고 알뜰히 살고 있었지. 그런데 그 초가집을 지나던 스님이 아기 울음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는 그 초가집에 들어가서는 그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참돌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참돌이 부모는 스님에게 시주로 쌀 한 바가지를 드렸단다. 그 후로 스님은 초가집을 지나칠 때마다 복을 빌어주고 쌀을 한 바가지 얻어가곤 했었지. 그러면서 참돌이는 무럭무럭 자랐지. 초가집을 지날 때마다 스님은 참돌이를 보게 되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단다. 그래서 참돌은 스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요. 넋이 나간 이야기를 해주셔야지요?”

“성질도 급하긴~ 어느 날, 참돌이가 우물가에 서서 우물 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지. 그 모습을 본 스님이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어. ‘뭘 그리 쳐다보고 있니?’, ‘예, 우물 속에 제 얼굴을 보고 있어요.’, ‘조심해라~ 그러다 네 넋을 빼앗기게 된다. 우물 안에 네 얼굴은 너의 넋 일지 모르지.’, ‘예? 저의 넋이라니요?’, ‘허허, 모르는구나. 네가 살아있는 것은 네 속에 넋이 들어있어서 살아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넋이 우물 안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니?’, ‘떨어지다니요?’, ‘우물 속에 보이는 네 얼굴이 너의 넋일 수가 있단다. 그걸 건져내야지. 그렇잖으면 너의 넋은 우물 속에 갇혀버리게 되는 거지. 그러면 너의 넋을 잃었으니 넌 살 수 있겠느냐?’ 그러자 참돌은 급히 두레박으로 우물 속에 있는 참돌의 얼굴을 퍼 올려서는 바로 마셨지. 그러자 스님은 웃으시면서 나미 아미타불 하시면서 가셨단다. 그 후로는 참돌은 함부로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지. 그뿐 아니라 시냇가에서도 시냇물에 얼굴을 비추어보지 않았지. 혹시 자신의 넋을 빠뜨릴까 조심하는 것이지.”

“그럼, 넋이 나갔다는 것은 그런 뜻인가요?”

“알지, 혼날래? 넋 나간?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지?”

“네, 어른들이 말 안 들으면 그래요.”

“그거 나쁜 말이야. 너 죽을래? 하는 거란 같은 말이지. 더 재밌는 얘기 해줄까?”

“네.”

“조선 후기에 서양인들이 찾아와서는 조선인들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었지. 그러자 조선인들은 자기들의 넋이 빠져나갔다고 야단이었지. 그래서 서양인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다 도망을 갔단다. 웃기지?”

“네, 정말 웃기네요. 그렇게 무식했어요?”

“그뿐만 아니야,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장래를 치르거든, 길게 늘어서서 널을 메고는 걸어가지. 그때에 맨 앞에 죽은 사람의 사진이나 초상화 같은 것은 없었지. 그리고 왕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죽기 전에 그렸어. 생전에 초상화를 그리면 산사람의 넋이 빠져나간다고 믿었거든. 그러던 것이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죽은 사람의 널을 메고 지나갈 때에 죽은 사람의 초상화나 사진을 맨 앞에 들고 가게 되었지. 혹시, 넌 장례식장에 가본 적이 있니?”

“그럼요. 제가 사십대라잖아요.”

“그래, 죽은 사람의 관 앞에 죽은 사람의 사진이 있지?”

“네.”

“그 뜻을 아니?”

“몰라요.”

“그건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넋이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아 놓는 거란다. 그리고 제사 지낼 때에도 앞에 죽은 사람의 사진을 놓잖아?”

“네. 맞아요.”

“그것도 그런 의미란다. 제사할 때에 죽은 넋 또는 혼이라고도 하지. 그 넋이 사진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가 봐요. 그래서인지 사진을 정성껏 모셔요. 깨끗이 닦고 그러던데요.”

“잘 봤구나. 그래서 사람은 그 넋이 들어있어서 살아 있다는 거고, 그 넋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죽은 것이라는 것으로 믿고 있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으니깐 초상화를 집안에 벽에나 특정한 장소에 잘 모시잖니?”

“아~ 그래서 집집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을 벽에 걸어놓은 거군요.”

“그래그래, 역시 우리 똥찬인 똑똑해! 그래서 똥찬이잖아~”

“할아버지~ 왜 자꾸 똥찬똥찬 그래요?”

“귀엽잖아~ 우리 똥찬! 똥이 얼마나 좋은 건데……. 다음에 얘기해 줄게!”

“네, 맴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동찬이는 맴 할아버지께 크게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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