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제목만 읽어도 기쁨이 솟는다. 코미디의 만담에서 오는 폭소? 재미난 영화를 보고 나서 기쁨? 어떤 깜짝 선물에 솟는 행복? 그것과는 비교의 차원이 다르다.
내게 주는 이 기쁨은 육적인 쾌락이 아니다. 맘에 가득한 행복도 아니다. 오직 내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기쁨인 것이다. '참 기쁨에 거하라!' 베드로 선생은 어찌 놀라운 말씀을 하였을까? 신학자들의 공통적 인식은 예수님은 무식한 자들만 뽑아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특히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니깐... 무식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생각이 아닌가? 내가 보기엔 신약성경에서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쓴 말씀이 상당히 깊고 심오하며, 놀라운 메시지가 있다. 바울의 서신에는 신약성경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는 주로 유대교적 율법을 많이 다루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종교화 하는데 매우 적합한 교리들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베드로의 서신은 두 권뿐이지만 예수님이 가르치신 많은 부분에서 매우 복음적이며,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쳤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면.. 더욱 건고한 기독교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바울신학이라는 교리적 기독교 교회가 세워졌다. 그래서 나는 베드로 전후서를 매우 좋아하며, 즐겨 묵상을 한다. 특히 본문에서, "그러므로 참 기쁨에 서라!" 이 말씀은 오늘날에 시련과 고통으로 상처를 받는 이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참 기쁨에 서는 자라면, 깊은 신앙을 가진 분, 즉 크리스천인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어린아이과 같지 아니하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 어린아이들을 잘 살펴보아라. 어린아이는 거짓 없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또한 어떤 슬픈 일을 당해도 곧 기쁨에 머문다. 어린아이가 어른들보다 훨씬 현명하고, 진실하다. 그런데 어른들은 일상생활에서 어린아이에게 공갈, 협박, 강요를 하여 굴복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침묵을 한다. 참 기쁨에 거하려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성숙하면 참 기쁨을 누릴 줄을 안다. 단, 어른들의 협박이 없으면 말이다. 그래서 난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