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이제 딸아이는 여덟 살이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당신을 빼다 박았군!”
고집, 총명함, 그리고 그 배짱이 아내를 쏙 빼닮은 것이다. 그 끔찍한 밤을 겪은 후, 우리의 삶은 정말로 예전 같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로 예전 같지는 않으리라. 그 어떤 것도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니까. 사랑은 하나님의 주관적인 선물이다.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던 그 아기는,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디게 해 준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기적으로 변화시킨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아이처럼 울고 어른답게 일어나라(기적의 선물)/가이드포스트>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밤 10시에, 남편이 교회 당회를 하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강간을 당했다. 놀란 두 부부는 많은 시련을 이겨내야만 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사회복지에 상황 설명과 의사의 임신 테스트와 각종 검사 등에 말이다.
그러나 결국 임신하게 되고, 주변에 사람들의 위로와 목사님의 위안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젠 전과 같을 수 없겠다는 심정이 두 부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사랑스러움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견딜 수 없는 선택이 말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깊은 뜻을 깨닫게 했다. 미움과 증오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이 말이다. 새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딸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그때 강간을 당하던 때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한국 아니 조선의 정서대로라면, 아마도 죽여서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오랑캐에게 붙잡혀간 여인들, 아내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 남편들, 아니 남자들은 어떻게 했는가? 더러운 여자라고 해서 외면하거나 죽이거나 아니면 내쫓아내지 않았는가? 그들이 모여서 기생의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런 정서가 지금도 조선이 아닌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지 않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국인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양인에게서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 목사와 사모는 현실에 어려움을, 고통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더 놀라운 은혜를 받은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보다 더 큰 깨달음이 있을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은 가장 큰 은혜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편 그 딸아이를 생각하면, 그 딸아이도 자신이 원해서 세상에 태어났을까? 그 사실을 알았다면 엄마에게서 태어나기를 원했을까? 하지만 딸아이도, 그 엄마도 그리고 그 아빠도 하나님을 믿는 분이었기에 특별히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에 아무 조건 없이 목사님과 사모님은 그 딸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선물이기 때문에 더욱 큰 사랑으로 그 딸아이를 키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에게도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내가 임신을 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태몽으로 하얀 구름 사이에 밝게 웃는 여자 천사를 보았고, 그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여전히 태몽대로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간호사 내게 아기를 건네주면서 한 말을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머, 이 아기를 보세요! 어쩜 이렇게 웃을 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