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불확실성은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것을 알더라도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에도 정도가 있다. 경제와 정치, 문화, 기술 등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예전 세대가 자신 있게 앞날을 예측할 수 있게 했던 연속성이 많이 사라졌다.
이미 20세기 초에 화이트헤드는 우리의 시간 경험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이 한 사람의 일생보다 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나 늙었을 때나 별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았다. 반면, “오늘날에는 변화의 시간이 한 사람의 일생보다 짧고” 앞으로는 더욱 짧아질 것이다. 변화는 우리네 삶의 본질적인 구성요소가 되었고, 그런 끊임없는 변화와 불확실성을 견디고 오래 지속될 만한 것은 세상에 별로 없다.
<차이와 존중-문명의 충동을 넘어서/ 조너선 색스 지음>
인간의 문명은 점점 가속되고 있다. 시간과 문명도의 좌표에서 Y는 X의 제곱으로써 점점 가속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불확실성이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의 변화 속도도 가속되고 있다. 즉 인간사회의 환경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시내로 볼 일이 있어 갈 때에는 날을 정하고, 시간을 계산하고, 하루를 보내야만 했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볼 일이 있으면 자가용을 타고 잠시 다녀 올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현대인이 옛사람보다 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문명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의 의식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즉 의식의 파장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의식의 파장이 길었을 때는, 생각의 깊이와 범위가 넓어져 많은 생각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의식의 파장이 짧아질수록, 생각의 깊이와 폭이 좁아져 찰나의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놓치고 지나쳐갈 뿐이다.
그 예를 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주변을 즐기며, 생각도 많이 하며, 여유롭게 생활을 한다. 반면에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은 주변을 즐기거나 생각을 많이 할 여유가 없이 바쁘게 생활을 한다.
변화와 불확실성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명의 변화와 인간의 불확실성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속현상은 점점 인간의 불안감을 가증시키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불안증, 우울증, 공황장애, 자살 등이 비례 상수로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본질까지도 바뀌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가 세계화의 인식인 것이다. 전통과 문화, 종교와 철학, 인생관과 세계관까지 변화와 불확실성의 조건 속으로 빠져버리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변화는 삶의 도전이 되었었지만, 이제는 변화와 불확실성이 인생의 구성요소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인간이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인간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변화가 느리게 일어났을 때에는 인간은 세상을 바꾸어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변화가 빨라지면서 인간이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가는 세상을 쫓아가기 바쁘게 되었고, 인간의 삶의 폭이 매우 좁아져 감으로써 불안감이 가증되었고, 세상의 변화는 불확실성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과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물리학이다. 고전물리에서 현대물리로 오면서 과학의 절대성이 상대성으로 변하고, 상대성이 불확실성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인간의 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문명의 마약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를 살펴보면, 사진 기술에서 영상기술, 영상기술에서 다양한 미디어 기술로 진화하면서 점점 인간은 대중 영화관에서 안방 영화관으로, 그리고 손바닥 영화관으로……. 다음은 입체영상으로, 일체 영상으로 진화하면서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한 마비현상과 가상세계로 몰입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 가치관, 인격체를 다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