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이젠 황혼을 바라보는 세월……. 하나 둘 소장한 물건들을 풀어주는 생활 속에서 놀라운 오래된 만화책, 『짠·발짠』, 저자 김정파의 글과 그림이다. 찍어지고, 발해지고, 삭아졌다.
그때, 중학생 시절에 보수동 책방 골목길에서 발견한 장발장의 만화책이었다. 그는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잡혀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어쩜 나의 모습을 보는 듯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등록금을 못내 학교를 쫓겨나서 거리를 헤매던 나는 하루에 한 끼조차 먹지 못한 허기진 몸을 이끌고 걸어가던 중에 내 눈에 띈 헌책인 장발장! 붕어빵으로 끼니를 채울 돈을 선 듯 내고 사고 말았다. 그러나 장발장 만화책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프랑스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불』 [Les Miserables]이란 소설책을 한국에서는 《장발장》이라고 소개되었던 것이다. 가석방된 장발장은 노부인의 도움으로 지붕이 낮은 작은 집으로 찾아갔다. 즉 나이 많은 목사의 집이었다. 거기서 묵게 된 장발장은 은 접시를 보는 순간 깊은 밤에 몰래 훔쳐 빠져나가다 경찰에 잡혀 되돌아왔지만, 목사는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냐며 훔친 것이 아니라 준거라고 말하자 장발장은 크게 뉘우치고 평생을 나이 많은 미리엘 목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면서 성실하게 살아오면서 나중에는 시장이 되었다.
어느 날, 장발장은 자신이 세운 자혜병원에서 환자로 있는 가련한 여직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의 사정을 들은 장발장은 자신의 공장인 구술 공장에서 쫓겨난 사실과 여관에 맡겨둔 어린 딸에 대한 사정을 들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딸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숨지고 말았다. 장발장은 그녀의 부탁을 잊지 않고 그 여관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딸 코제트는 여관에서 하녀처럼 지내는 모습을 장발장은 보고서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 코제트를 데리고 갈 수가 있었다. 이처럼 가련한 코제트가 내 마음에 크게 자리를 잡고 말았다. 온갖 학대와 멸시와 고된 일 속에서도 자신을 데려갈 엄마를 그리워하며 견뎌온 코제트에게서 나의 힘든 학창 시절에서 위로가 되었었다. 어린 마음에 코제트 그녀는 나의 꿈이 되고, 나의 벗이 되었다.
무척 어둠이 짙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코제트는 문밖에 나와 두 손으로 눈물을 씻고는 파르르 떨고 있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는 슬픔에 잠긴 엄마의 눈동자처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나는 너무나 이해할 수가 있었다. 냉방에서 차가운 이불속을 두껍게 옷을 껴입은 채로 들어가 자야 했었던 나도 역시 그러했으니깐 말이다. 추운 겨울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햇볕에 몸을 녹이며 읽었던 만화책 ‘장발장’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