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들꽃이라도

[소라 섬 소녀가 그리다]

by trustwons

소녀 소라리자는 들길을 걸으며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소라 섬의 무한한 넓은 바다를 회상하며 이름 모를 들풀과 꽃들과 함께 지내며, 소녀는 나름대로 이름을 불러주었던 들꽃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면서 시카고대학교 주변 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목적이 있어서 가는 길은 아니었다. 소녀는 그렇게 걸었다. 소라 섬을 이리저리 뛰놀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던 소녀는 유난히도 들풀을 좋아했었다. 마치 자신도 들풀처럼 이름 없이 소라 섬을 돌아다니면서 즐거워했었던 그 시절을 되새겨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소녀는 이름 없는 들풀처럼 살아가는 것을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햇빛에 제일 먼저 반기고, 작은 바람에도 반기고, 아침 이슬에 젖어 살짝 몸을 떨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며 꿋꿋하게 자라줘서 소녀에게 포근함을 주는 들풀과 들꽃에 소녀는 환희를 느끼곤 했었다. 소녀 소라리자는 거침없이 코앞에 마주한 들꽃을 움켜쥐고 입맞춤을 하고는 이내 힘껏 뽑았다. 그리고 손에 있는 들꽃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읊었다.


《이름 없는 들꽃이라도 좋다

빈 들에 바람을 맞으며 서리라

벌 나비가 외면할지라도 좋다

햇살에 내 몸을 내밀며 서리라

거목의 그림자가 가려도 좋다

내 몸을 땅속 깊이 묻고 서리라

짐승들이 밟고 지나가도 좋다

나는 열두 번도 다시 일어서리라


이름 없는 들꽃이라 해도 좋다

나에게는 분명 내 이름이 있다

나를 소생케 한 씨앗이 있었다

씨앗을 품었던 들꽃이 있었다

나는 반드시 내 씨앗을 품으리라

다시 땅속에 뿌리내려 피우리라

내가 이름 없는 들꽃이라 해도

나는 내 이름으로 꽃을 피우리라

나는 내 씨앗을 땅 위에 내리리라》


소녀는 《이름 없는 들꽃이라도》라고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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