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rustwons Apr 22. 2023
임석영 선생의 애절한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는 시를 소개합니다. 아내를 보내고, 이어서 딸들을 보내고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시던 임 선생은 결국 625 동란 때, 후퇴하는 인민군에게 잡혀 북으로 끌려간 지 72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가신 님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말이 없네.
비바람 잊은 날이 있으랴
너희들 꽃이 되면 꽃을 보고
달이 뜨면 달,
비가 오면 젖으리 비에 젖으리
눈이 오면 맞으리 눈을 맞으리
유성이 하늘마다 흘러가는
바람이 고요 잠든 오늘 밤에
나 홀로 언덕 위에 서서
시름이 한이 없구나
말없이 혼자만 간
갔구나 셋은 저 세상
그리워 보고 싶어
함께 뛰던 고개 위에서
귀뚜람 밤새도록 울어대는
산 넘어 먼 개 짖는 오늘 밤에
나 홀로 꿈에 놀다 잠이 깨어
외로움이 한이 없구나
가고는 아니 오는
갔구나 셋은 저 세상
그리워 보고 싶어
함께 자던 이불속에서
보름달 소리 없이 스며드는
기러기 울며 가는 오늘 밤에
나 홀로 창을 열고 홀로 앉아
눈물이 한이 없구나
불러도 대답 없는
갔구나 셋은 저 세상
그리워 보고 싶어
함께 울던 달빛 아래서
북녘에서 월남하여 자유의 품 안에서 오손도손 살고자 했을 텐데... "갔구나! 셋은 저 세상" 홀로 정릉 산기슭에 있는 집에서 외로움에 자주 정릉 북한산을 홀로 등산하시면서도 얼마나 사랑했기에, 얼마나 그리웠으면, 잠 못 이르는 깊은 밤에 그리워 보고 싶어 하셨을까?
가끔 임석영 선생님이 그리울 때면... 정무심이 쓴 [젊은 날의 노오트]를 누렇게 변질되고 모퉁이가 부서지는 낡은 책이지만 버리지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이렇게 다시 읽으며... 사람의 애절함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