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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 있는가

[애시]

by trustwons

이럴 수 있는가?

어둠이 새기 전에

유서를 남기고

갈 수밖에 없었던

노총각


어미를 잃고

홀아비를 모시고

살아온지

수십 년

혼기를 놓쳐도

외롭지 않았건만

해지고 해 뜰 때

하늘이 주신 곡식을

거두고 심고

하기를 여러 해


이제

아비는 늙어가고

총각은 중년에 이르니

남들이야 어찌 보던

아비를 바라보며

따뜻한 밥 한 그릇에

사랑이 넘실거렸건만


어느 날에

해가 기우니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길을 나선 아비는

이름 모를 트럭에

치어 죽고

사라져 간 트럭운전수


길가에 남은 것은

오직 아비뿐

오직 아비뿐

되돌아보며

한 없이 눈물만 흘리는

노총각

노총각

아비를 양지바른 곳에

묻고 돌아와

한 없이 눈물만 흘리고

긴 밤을 지새우더니


땅이 꺼지듯

암울한 기인 밤에

노총각은 말이 없고

노총각은 눈물이 마르고

노총각은 삶을 잃고


결국은

어미 따라갔어라

결국은

아비 따라갔어라

오호 비재로다

오호애재로다

누가 인생을 논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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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4일, 아침 뉴스에 농촌에서 노총각과

함께 사는 늙은 노인이 해 질 녘에 아들이 논에서 돌아오지 않자 길을 나서다가 트럭에 치어 죽어, 그 밤에 아들은 슬퍼하다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그의 영전에 이 시를 보내다.

* 만일 그때 그 트럭운전수가 이 시를 읽게 된다면, 꼭, 제발 노인의 묘를 찾아가서 속죄를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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