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고등학교-3

[드림 레터링]

by trustwons

한산 고등학교

-기독교학교 설립에 따른 시설과 재정에 대해 꿈꾸는 글-


- 3장-

어느새 잠이 든 김기자는 다음 날 환하게 비쳐오는 햇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9시였다. 왜 깨우지 않았을까 하고 의문을 갖고 부랴부랴 일어나 세면을 하고 가방을 챙겨서 내려오니 기다렸다는 식으로 최 양은 인사하며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늦었습니다. 이리로 오셔서 아침 식사를 하시지요.”


식탁 위에는 된장국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간단한 야채 반찬들이 김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역시 아침도 야채뿐이군 하며 김기자는 가볍게 식사를 끝내고 최 양을 따라 접대실로 갔다. 이미 교장선생님은 와 계셨다. 김기자는 교장께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김기자 님도 편히 쉬셨습니까?”

“아니요, 최 양이 놔주질 않아서요.”

“아니, 제가 언제......”


김기자는 최 양을 바라보며 합죽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보시고 좋은 글을 부탁드립니다. 최 양이 안내를 할 것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김기자는 다시 최 양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김기자는 최 양을 따라 접대실을 나와 행정관을 끼고 화단사이로 걸어가니 거대한 건물인 교실들이 보였다. 십자가형의 건물은 아치형의 창문들과 붉은 벽돌로 벽을 한 모습이 고풍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일층에는 사방이 탁 트여있고 둥근기둥들만 여러 개 있었다. 기둥에는 성화들이 조각으로 또는 그림으로 새겨져 있었다. 십자가형의 중심에 이르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원형모양으로 되어있고, 천장에는 하늘이 보이도록 투명유리로 되어 있었다.

오늘따라 맑은 하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천장에서 햇볕이 내려 쪼여서 주변이 환하여 자연스러운 감이 들게 해주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동편과 서편에는 중앙으로 복도가 뻗어 있었다. 양쪽으로는 교실들이 보였다. 실내는 참 깨끗하였다. 특이한 것은 교실과 교실 사이에 화장실이나 휴게실이 있어서 거기서 빛이 비쳐서 복도가 전등을 켜지 않아도 은은하게 환하여 어둡지가 않았다. 교실의 크기는 열 평 정도로 아담하여 25명의 학생들이 수업하는 모습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과학시간이었는지 실험기구들이 간이 실험대 위에 놓여 있었고, 선생님은 모니터로 영상 실험을 보여주고 계셨다. 동편에는 4개의 교실이 있는데 1학년들의 교실들이었다. 서편에도 4개의 교실이 있는데 2학년들의 교실들이었다. 그리고 북편에는 3학년들의 4개의 교실들이 있었다. 학생들의 수가 적어서인지 조용한 편이었다. 남편에는 중앙에 복도가 길게 뻗어있고, 양편에는 특별실들이 있었다. 과학실, 미술실, 어학실, 음악실, 컴퓨터실, 시청각실 등이 있었다. 그리고 양호실과 학생휴게실과 매점은 건물 중앙의 돌아가는 코너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김기자는 최 양과 함께 학생 휴게실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하면서 음료수를 마시며 실내를 둘러보니 150여 명이 들어와 앉을 수 있도록 나무 탁상들과 의자들이 있었다. 수업 중이라서 한산하였다.


“그러니까, 이층에는 주로 수업과 관련된 교실과 특별실로 되어 있는 것이군요.”

“예, 그리고 중앙에는 양호실과 학생휴게실이 있지만 교실 사이에도 작은 휴게실을 설치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그럼 교사들은 어디에 근무하는지, 학생들과 떨어져 있어서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는 공간을 뛰어넘어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교사와 학생들이 노력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서 통제구역이 없는 셈이지요. 열린 공간과 열린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제의 역할로는 바로 예절의 제도가 있지요. 기독교의 정신은 바로 인간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김기자는 최 양을 따라 중앙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북쪽 편에는 식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쪽 편에는 교사의 연구실이 교과별로 각 실이 있었다. 국어과 연구실로 들어서니 교사용 책상이 2대 놓여 있었고, 책장과 소파가 있었다. 서쪽 편에는 회의실, 교사휴게실, 소회의실, 전산실, 정보자료실 등이 있었다. 그리고 남쪽 편에는 교육 자료실과 학생회실과 상담실 그리고 도서실이 있었다. 특히 상담실을 들러보니 전담 교사가 있었다. 상담실에는 작은 방들이 서넛 있었고, 전화 상담실까지 있었다.

최 양은 학교의 옥상에도 시설들이 있다며 김기자를 옥상으로 안내를 하였다. 김기자는 의아한 심정으로 중앙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오니 파라솔과 테이블들이 동서 편으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한산의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장관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북쪽 편에는 천막 같은 간이 건물들이 있었다. 기도실과 작은 예배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왜 옥상에다 예배실을 했느냐 묻자. 하늘이 가까워서라고 최 양은 농담까지 했다. 사실은 다윗도 천막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듯이 화려한 성전보다는 검소한 성전을 통해 자숙하는 신앙을 키워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남쪽 편에는 특별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실(室)들이 많이 있었다. 학생들이 활동하기 편하도록 아래층에 설치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최 양은 학생들이 활동하는 시간을 제한하기 위해서 옥상에 설치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소음을 제한하기 위해서도 옥상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한낮에는 소리가 위로 퍼져나간다는 사실과 공기가 매우 상쾌하다는 것이었다. 산이 학교에 가까이 있고, 주변에는 주택들이 적어서인지 공기가 상당히 맑았다. 최 양과 함께 건물 아래로 내려왔다.


“최 양,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학교 구조로 보아 학생들과 교사들은 같은 건물에 있으니 사제지간에 교류가 잘 되리라 생각하지만, 교장선생님과는 거리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결하실 거지요?”

“그런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건물 안에 같이 있다고 해서 교류가 잘 된다고 하는 생각은 선입견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아까도 말했듯이 공간을 넘어서는 생활태도가 중요하지요. 우리 학교는 바로 그런 열린 공간적 차원에서 교육과 행정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교장 선생님도 자주 선생님과 학생들과도 대화를 잘하십니다. 항상 교장선생님은 자신을 열어놓고 계시며, 겸손하셔서 누구나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분이나 배우는 자가 서로 배우는 태도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장도 가까워질 수가 있게 되는 셈이지요.”


동쪽 편에 있는 운동장이 타원형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둘레에는 가로수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둘러져 있었다. 운동장의 북쪽으로는 농구장과 테니스장이 잘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행정관 건물 옆에는 텃밭이 있는 것이 보였다. 정문에서 큰 문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행정관 건물과 기숙사관과 사택이 있고, 교실 건물이 정면에 있으며, 좌측으로는 주차장과 소운동장이 있었다. 김기자는 최 양과 함께 학교 건물을 둘러보는 동안에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남녀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학생들과 뛰어가는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접대실로 돌아온 김기자는 교장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이모저모 궁금한 것과 좋은 의견들을 나누었다. 놀라운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업무연락이 잘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네트워크의 시스템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상호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욱뿐만 아니라 행정까지도 잘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정보자료실과 행정실에서도 인터넷으로 각종 자료수집과 분석하는 인력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안식년 교사제도가 있어서 그리고 전문인과도 교류가 잘 이루어져 있어서 분석수집에 대한 일처리가 잘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김기자는 학교식당으로 가서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김기자는 몇 분의 선생님과 학생들과도 대화를 가졌다. 시설면에 있어서 큰 불편이 없고 건물구조가 편리하게 되어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다. 학교 규모가 적당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시설을 이용하는데도 복잡하지 않다고 하였다. 특히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김기자는 식사 후 교장선생님과 행정부장과 그리고 몇 분의 선생님의 환송을 받으며 한산 고등학교를 떠났다. 학교의 전용 자동차를 타고 최 양과 함께 대전 역을 향해 가면서 김기자는 한산학교에 대해 취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 양은 학교교육이념과 운영방침 및 시설에 관한 자료들을 서류봉투에 넣어 김기자에게 건네주었다.

김기자는 최 양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여 자기의 명함을 최 양에게 주면서 꼭 서울에 오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김덕신기자는 곧바로 사무실로 가서는 자료정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현상하여 「참 기독교 교육」이라는 잡지에 기사 할 내용을 정리하느라 늦도록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시장 끼가 있어서 라면을 끓여 먹고는 소파에 앉아 커피가지 마시며 최 양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멀지 않은 날에 최 양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커피를 마저 마시며 그녀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추신글>

‘한산 고등학교’의 단편소설은 오래전에 쓴 글로써, 1993년 여름에 전국기독교사 수련회에 참석하여 교사들의 소망나누기에서 모든 교사들이 소망하는 것이 성경적 세계관에서 교과교육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왜, 소망을 말하기만 하고 실행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재정이 없이 어떻게 할 수 있냐고들 말해, 왜 믿음이 없느냐? 우리가 하려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다면 도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녁에 제 방으로 몰려왔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물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야학봉사를 해왔기에 남산에 있는 리라초등하교를 예를 들면서, 리라초등학교는 처음에는 공민학교로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현직교사들이니 사직까지 하면서 할 수는 없으니 방학을 이용하여 시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뜻을 모아 겨울학교부터 실시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2년간을 방학을 이용하여 했을 때에 재정도 없이 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도우셔서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학부형들이 지원을 해주어서 전국 기독교 가정의 고교생들이 참석하여 멋진 기독교 교육실험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사회의 간사로부터 중단할 것을 요청해 와 교사들이 그렇게 받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단되었습니다.

그러자 미련이 남은 교사 몇 분이 제게 와서 미래를 위해 기독교학교 설립을 위한 실행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때에 저에게 기독교학교의 건물에 대한 설계도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소설형식으로 학교설계를 써서는 지인을 통해 한양대 건축과 교수에게 청사진을 부탁했습니다. 교수님은 청사진과 모형도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학교 실행위원 중에는 진실하지 못한 자가 있어서 이 모임을 장악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에 이 모임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방학을 통해 활동하던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기독교 학교 실험학교를 2년간 하는 동안에는 교육부에는 대안학교란 것은 아직 없었습니다. 저희 실험학교가 중단 후에 교육부산하에서 학교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란 것을 개설하여 오늘날에까지 많은 대안학교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기독교 학교는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다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소망도 진실에서만이 그 꿈을 실현할 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그때에 있었던 자료를 공개합니다. 진실은 숨겨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기에 공개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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