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인생-1

[한 장애인을 위한 소설 편]

by trustwons

소리 없는 인생

들어가는 글

어느 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한적한 시간에 홀로 뜰에 있었다. 추웠던 긴 겨울을 잊을 정도로 봄 사월이었다. 아마도 사월은 사월(思月)이라 말하려던 참이었다. 의자도 없이 작은 돌 위에 걸터앉아 바람을 맞으며 개나리꽃들의 환희를 바라보며 있었다. 개나리꽃하면 동요가 생각이 난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모처럼 어린 시절이 바람을 타고 가슴에 스며든다.

그랬었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면 당황하시던 어머니,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다시는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오지 마라!’ 하신 후에 한 번도 친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없었다. 조금은 거짓말도 된다. 그렇게 수 세월이 흘러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넌 친구도 없냐? 직장에서도 없냐?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온 걸 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의 말이 떠올려다. 그리고 묵묵히 집을 나갔다. 아파트빌딩 길을 걸으며 아파트건물 틈새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을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내겐 친구가 없는가? 친구? 한 번도 친구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등산을 가면 함께 가는 친구가 있었고, 인사동 찻집에서 마주 앉아 녹차를 마시는 친구가 있었고, 내 실험실에서는 찾아와 잠시 휴식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더 필요할까?

그런 나에게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생명의 전화에서는 상담친구가 있었고, 지적장애인 친구들도 있었고, 학창 시절의 친구도 있었고, 무엇보다는 산과 들에 자연의 모두가 내 친구 아닐까?

요즘 민주화 시대라 외치며 떠들어대는 언론 속에서 흥분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때에, 정말로 친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문민정부 시대라고 외쳐대는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와서 듣지도 못한 아이엠에프(IMF)가 발생했다고 난리였다. 술렁이는 소리가 거리마다 직장마다 멈추질 않았었다. 또다시 외로움이 된 나는 개똥철학에 빠지고 말았다. 대학시절에는 그토록 입에 달고 다니던 것이 개똥철학이었다.

묵묵히 직장의 창문에서 밖을 바라보던 나는 「소리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내면에서 울려 나왔다. 나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내 노트북을 열어 소설을 쓰기 시작을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모처럼 가족여행을 미국으로 갈 때에 쓰던 소설은 노트북에 있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노트북을 열었을 때에는 노트북은 먹통이 되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나는 산모가 태중에 아기를 잃었을 때처럼 고통스러웠었다. 그 아픔이 이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다시 쓰게 되어서 가슴이 뭉클하다. 다행히도 유인물로 일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소리 없는 인생의 소설을 쓰고자 한다.

2023년 6월에, 원스




1. 하루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 보이도록 전면이 창문으로 되어 있는 40평 정도의 방안에는 사르르 또닥또닥 하는 소리 외에는 참으로 고요하다. 큼직한 평면으로 되어 있는 액정 모니터가 벽면에 액자처럼 걸려 있다. 그리고 C자형의 책상 위에는 크고 작은 모니터와 컴퓨터가 3대가 있었고, 칼라용 프린트가 옆에 놓여 있었다.

철민은 뭔가를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 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놓여 있는 소파에 와 앉았다. 철민은 물끄러미 바다의 수평선을 주시해 바라보더니, 일어나 옆 테이블에 있는 커피 보트에서 원두커피를 따라 마신다. 날씨가 매우 쾌청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바다와 하나인 듯 푸른빛이 수평선에 맞닿았다. 간혹 갈매기 한 마리가 점을 찍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방안에는 커피 향이 가득 매울 뿐 고요하였다. 철민은 커피를 한 잔 더 따라 마시었다.

아침 일찍부터 철민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지 반나절이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인터넷 속에서 세계의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가는 다시 세계의 전국을 누비는 일이 철민의 주생활인 것이었다. 철민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보내었다. 오늘도 십 여건의 자료를 주문을 받고 보냈다. 생활 자료와 상품 자료에 대해 값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서도 값이 다르다.

철민은 인터넷으로 모든 자료를 검색하여 신속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철민은 방금 일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소리가 없는 고요한 방 안에서 철민은 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은 자료를 찾아 신속하게 이 메일로 발송하고 또 발송하고 하는 일이 그의 하루 일과이었다. 어떤 날은 커피를 마실 시간조차 없이 종일 자료를 찾아 발송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곤 하였던 것이었다. 그럴 때는 철민은 식사를 간단히 한다.

철민은 하나뿐인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래서 누나는 동생의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철민이가 바쁠 때는 식사 대신으로 영양식을 누나는 제공해 주었다. 철민은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었다. 그래서인지 철민은 컴퓨터에는 매우 능숙하게 다를 줄을 안다.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에게는 모니터의 영상들에 흥미를 가지게 하였던 것이었다. 비록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화면에 보이는 영상 매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니 웬만한 영상들은 철민은 빨리 이해를 하였던 것이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그렇게 셋이 살아왔던 것이었다. 노상을 하시면서 생계를 이어가신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늘 방 안에만 틀어박혀 보내는 철민에게는 컴퓨터가 유일한 친구이며 세계인 것이었다.

어릴 적에는 8비트 컴퓨터로 오락을 즐기다가 점차적으로 컴퓨터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철민은 오락보다는 각 나라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세계의 이야기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철민은 남몰래 각 나라의 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 기능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말을 못 하지만 눈으로 보는 언어와 영상으로 세계의 문화와 정세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으로 방 안에서 엄청난 재산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자료는 고가의 대가를 받기도 하고 제공하기도 하였던 것이었다. 이제 철민은 경제, 정치, 사회에까지도 통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과 재벌들도 그에게 많은 자료를 부탁하였으며, 그에게 많은 재정적 지원과 정치적 영향도 실어주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서울 어느 판자촌에서 조그만 심부름 정도의 일을 해왔었다. 그러다 점차 그의 능력이 인정되고 알려지면서부터 일거리가 많아지게 되었고, 수입이 늘어나자 철민은 누나와 함께 강원도 동해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한적하고 저렴한 땅을 사서는 거기에 개인 주택을 지었다. 지금은 이 저택에서 철민은 인터넷 대행 업무들을 하면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었다. 직원이라야 누나와 단 둘 뿐이었다. 몇 년 전에 함께 살고 계셨던 어머니가 서울로 가셨다. 이곳 시골이 너무 적막하다면서 서울에 작은 집을 하나 장만하셔서 철민의 어머니는 재래시장에서 일을 하고 계시었다. 평소에 노상에서만 장사를 해 오신 경력이 있으셔서 철민의 어머니는 재래시장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야채장사를 하고 계셨다. 그러나 철민의 마음은 허전했다. 옛날처럼 먹기 힘들었던 시절은 지나갔으나 커다란 저택에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사는데, 왠지 모르게 무한한 바다를 홀로 떠가는 듯한 마음이 철민은 자주 들곤 하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철민은 일을 하다 말고 창가에 앉아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시내에 갔다 돌아온 누나는 동생의 건강을 생각해서 맛난 음식과 일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누나가 방 안으로 들어서니 집안에 장치되어 있는 빨간 등이 깜빡깜빡 하자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철민은 문 쪽을 향해 쳐다보았다. 누나는 철민에게 미소를 살짝 보이면서 한쪽에 들어온 물건들을 정리해 놓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간단한 음식을 누나는 가져왔다. 야채주스와 샌드위치였다. 철민은 소파에 와 앉아서는 주스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철민의 누나는 그의 옆자리에 와 앉아서는 커피 한 잔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두 남매 사이에는 별로 말이 필요 없는 편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으니 서로가 필요한 것은 눈치로도 다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 철민에게는 말이 필요 없기에 누나도 말의 필요성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깜빡깜빡 전화가 왔다는 신호가 전화기에 부착된 깜박등이 깜박이며 알려주고 있었다. 철민은 곧 일어나 컴퓨터가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는 모니터에 나타난 메시지를 읽어갔다. 누나는 동생 철민이 다 먹은 그릇들을 들고는 철민이 자리로 다가가서는 모니터의 메시지를 들여다보고는 “여행자의 주문이군!” 하면서 방을 나갔다. 철민은 재빨리 받은 메시지를 다른 모니터 화면에 옮겨 놓고는 인터넷상에서 자료들을 찾고 있었다. 여행 주문자는 간단하게 여행 목적지와 일정과 경비를 제시하고는 가장 효율적인 여행을 의뢰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신속하게 시기와 항공편 그리고 숙소의 실태와 관광 코스 등 열 가지의 비교자료를 뽑아 고객에게 메일로 보냈다. 1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고객은 세 번째의 안을 선택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요구된 금액을 인터넷 뱅크로 송금을 보내왔다. 철민은 곧바로 공항에 항공편을 예약을 하고 여행지의 숙소에 예약을 하고는 모든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고는 그 결과를 고객에게 보냈다. 고객이 선택하기 위해 1시간을 소비한 것 외에는 일처리는 불과 30분도 안 걸렸던 것이었다. 이처럼 철민의 신속하고 정확한 자료 검색과 처리능력은 매우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그는 새 정보를 살피기 위해 외국어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그리고 주식과 시장 흐름까지 검색하면서 즉각 중요한 자료들을 저장해 놓았다. 그리고는 목차관리를 만들어 놓았다.

어느덧 해가 기우는지 바다에는 어둠이 수평선으로부터 밀려오고 있었다. 멀리 바닷가에는 하나 둘 불빛이 해변을 따라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철민은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였다. 사람들의 호흡소리가 저녁 해지는 모습 속에서 불빛들로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하듯이 일손을 멈추고 다시 창가로 가서 서 있었다. 바다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지만, 여기저기 피어나는 불빛들이 세상 사람들의 삶을 노래하는 듯해 철민은 이 시간만을 기다리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사르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누나는 저녁요리를 운반테이블에 차려서는 가져왔다. 철민은 저녁식사만은 항상 누나와 함께 창문가에서 식사를 하였다. 먼 야경을 바라보며 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음악처럼 철민의 저녁식사를 북돋아주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왕새우와 꽃게가 주 요리이었다. 철민의 누나는 제법 솜씨 있는 요리사라고 할 정도였다. 동생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으로도 요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두는 누나였던 것이었다. 철민의 누나는 대학은 못 나왔지만, 동생 못지않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내고야 마는 성미였다. 중3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누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는 일찍 직장생활을 하였던 것이었다. 누나는 처음에는 작은 빌딩에서 건물 관리하는 사무실에서 혼자서 경리의 일을 보아주다가 치근덕거리는 사장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가 다른 점포로 가서 일을 했었다. 나중에 누나는 3살 아래인 동생의 뒷일을 보아주다가 어느 정도 사업이 잘되자 전적으로 동생의 일에 나선 것이었다. 손재주가 많은 누나는 틈틈이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요리를 배웠고, 수예에 관한 책들을 사다 보면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곤 하였던 것이었다. 요즘은 동생의 일을 도와주면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무명인 화가에게서 그림도 배우고 있었다. 가끔 우편물을 찾아오거나 직접 배달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누나는 차를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매우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때도 있었고, 일이 없을 때에는 누나만의 작업실에서 누나는 그림을 그리고 하였다.

오늘은 저녁식사가 푸짐한 걸 보니 누나가 장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동생은 그런 누나에 고마움의 말을 전할 수 없어 늘 미소로만 대신하고 하였다. 이들 두 남매의 식사는 참으로 조용하였다. 누나도 듣지 못하는 동생을 생각해서 실내에 소리가 나는 물건이나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았다. 철민은 거뜬히 누나가 차려놓은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누나는 준비된 과일과 커피를 후식으로 내놓았다. 둘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었다. 누나는 철민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었다. 창밖의 검은 하늘에는 유성들이 하나 둘 미끄러져 지나가고 바닷가를 따라 호화찬란한 불빛들이 깜빡거리며 물가에 비추어 내렸다. 가끔 자동차의 불빛이 땅을 핥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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