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인을 위한 소설 편]
2. 나들이
따스한 봄 날씨인지라 철민은 얇은 외투를 입고 해변을 홀로 걷고 있었다. 아직 해는 바다 수평면 위에 머물러 있어서인지 바닷바람이 훈훈하지 못하고 차갑기만 하였다. 옷깃을 세우고 하나 둘 모래알을 세듯이 모래사장을 철민은 걸어가다 보니 집에서 꽤 멀리까지 걸어왔다. 철민의 누나는 밤새 그림을 그렸으므로 늦도록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고 있었다. 철민은 늘 밤마다 창가로 바라만 보던 야경이 있던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오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뱃사공은 서둘러 손님을 태우려고 나섰고, 어부들은 밤새 한탕하고 돌아온지라 큰 자루에 가득히 물고기를 채어 메고 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철민에게는 흐뭇해하는 생동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담겨있는 슬래브 집들과 좁은 골목길을 철민은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늘 혼자였던 철민은 사람들의 땀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철민은 어릴 적에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소꿉놀이 하며 놀았었다. 너는 아빠하고 난 엄마 하는 거야 하던 희선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철민은 희선의 밝은 얼굴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지만 알아듣지 못해 그냥 웃으며 놀았던 모습들이 철민에게는 선명하게 보였다. 여럿 친구들이 몰려와 같이 놀자고 할 때마다 철민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희선이는 다른 친구들을 버리고 철민이와 함께 놀아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선이는 보이지 않았었다. 어른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모습에서 철민은 희선이가 아픈가 보다 하고 생각을 했었다. 희선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철민은 한 번도 집을 떠나 멀리 간 적이 없었다. 가끔은 아버지가 철민을 데리고 큰 거리로 가실 때에 몇 번은 따라간 적이 있었던 것 외에는 거의 집이 보이는 곳에서만 철민은 놀아야 했었다. 그러니 희선이가 입원한 병원에 한번 가본다는 것은 염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 후로는 철민은 희선이를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철민은 집에 박혀 지내다시피 했었다. 이를 본 철민의 아버지는 철민에게 컴퓨터를 사 주셨던 것이다. 그때부터 철민은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컴퓨터와 인연이 되어 살아왔던 것이었다. 철민은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늘 집안에서만 보냈어야 했었다. 가끔은 문밖에 나가 앉아 있거나 아니면 방 안에서 장난감이나 갖고 놀았던 것이었다. 그러던 철민은 아버지가 사다 준 컴퓨터가 유일한 친구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가 글을 깨우치게 된 것은 누나의 노력이었던 것이었다.
철민의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철민에게 그림을 많이 그려주었었다. 그리고 그림 밑에다 글씨로 그림의 내용을 알려주었었다. 이때부터 철민은 그림과 글씨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글씨 모양의 뜻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철민은 혼자 있을 때에는 누나가 그려준 그림들을 보고 또 보고 하면서 그림과 글을 익혀갈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철민은 점차 외국어까지 누나에게서 배웠던 것이었다. 나중에는 여러 나라의 글자까지도 철민은 컴퓨터로 스스로 배워갔던 것이었다. 철민은 여러 나라의 글자를 배우면서 세계에 대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세상 이야기들을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철민은 학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누나의 도움으로 글씨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까지도 알게 되어서 각 나라의 글자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컴퓨터에 관한 자격증까지 거의 소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남들은 대학에 가려고 밤늦도록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젊은 인생을 덧없이 허송세월로 보냈어야 했고, 대학에 가서는 놀기에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에 철민은 오직 방 안에서 컴퓨터와 세월을 보내야만 했었던 것이었다. 그런 철민에게 엄청난 꿈을 키워준 것은 인터넷 세상이었던 것이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 살에 작은 방 안에서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일거리로만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지는 기쁨을 위해서 시작을 했었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 달동네 작은 방 안에서 듣지도 못하는 한 젊은이가 인터넷을 한다는 소문이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펜들이 철민의 이메일을 통해서 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었다. 그리고 신문지상에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더 많은 고객들이 그를 도와주려고 그의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점점 홈페이지 운영의 비결을 터득하게 되었고, 보다 좋은 홈페이지 시스템을 만들어 갔던 것이었다.
그의 고객들은 그를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그에게 일들을 맡겨왔었던 것이 반전되어 그의 도움이 일의 효율을 높여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다. 기업가들은 많은 직원을 두는 것보다는 그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인들까지도 그에게서 좋은 정보를 얻고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일반인들도 여행을 한다거나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자 할 때도 그에게 의뢰를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대학교 교수들이나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까지도 그에게서 논문 자료나 강의 자료를 얻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그가 성장한 것은 처음에 아버지가 사다 준 컴퓨터였으며, 누나로부터 글을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니 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까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다양한 문화와 교육시설을 통해서 배웠겠지만, 철민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철민의 어린 시절은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했으며 방안에서만 지냈어야만 했었던 것이었다. 남들은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며 영수국을 밤늦도록 공부할 때에 철민은 컴퓨터와 놀아야 했었던 것이었다. 누가 그에게 큰 꿈이 이루어지리라 생각을 했었겠는가?
지금의 철민이가 세계의 여러 나라로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나누게 될 줄을 알았겠는가? 그의 활동 범위가 작은 방 안에서 세계의 여러 나라로 넓어질 줄을 알았겠는가?
그런데 세계의 여러 나라에 친구를 갖고 있는 그에게는 무엇인가 채워주지 못하는 공허함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철민이가 들을 수 없는 세상이었던 것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기계의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의 소리 등을 철민에게는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릴 적에 TV에서 정치인들이 서로 뭔가를 심각하게 다투는 소리를 철민은 듣고 싶었었다. 또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아우성 되는 소리도 듣고 싶었었다. 그러한 소리가 무엇인지 철민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에 집문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철민은 씻겨 내려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그 물소리를 듣지 못했었다. 비가 갠 날에 나뭇가지에서 재잘대는 새들의 소리도 철민은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가 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세상이 조용한 줄로만 알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글을 알게 된 후부터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들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로봇이 감정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에게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철민이가 이른 아침에 바닷가 백사장을 걸어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왔지만, 바다의 파도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마을의 사람들의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에게는 초지일관 고요하기만 하였던 것이었다.
한 어린 여자아이가 슬래브 집 대문에서 나와 해변으로 몸을 빙그레 돌며 깡충깡충 뛰어 오고 있었다. 철민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그 여자아이에게 눈을 맞추어 보고 있었다. 점점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자, 그 여자아이는 철민을 바라보고는 생긋 웃으며 지나쳐갔다. 철민은 어릴 적에 함께 놀아주었던 희선이가 생각이 났다. 그는 어린 시절의 마음이 살아나듯 하여 그 여자아이에게 웃음을 건네주었다. 슬리퍼를 신은 그 여자아이는 출렁되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는 파도가 밀려오면 깡충 뒤로 물러나고 다시 앞으로 다가가기를 수 차례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철민은 가만히 그 여자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옆에 앉아서 출렁되는 물에 손을 담그고는 맑은 모래를 집어 올렸다가 다시 쏟아놓고 하였었다. 여자아이는 그런 철민이를 우두커니 바라보더니 그에게 다가와 앉아서 고사리 같은 고운 손으로 물속에 있는 모래를 집어 올렸다가 쏟아내었다 하였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 여자아이는 생긋 웃었다. 철민이도 다시 희선이를 떠올리며 여자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둘은 연속해서 바닷물 속에 모래를 한 움큼 집어서는 사르르 흘러내리게 하면서 웃기도 하고 멀리 바다 끝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러자 철민은 여자아이의 손에 모래를 소르르 부으니 여자아이도 철민의 손에 모래를 소르르 붓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철민의 손목시계에서 깜빡깜빡 붉은빛이 깜박거리면서 진동이 왔다. 철민의 누나의 호출인 것이었다. 그는 소리를 듣지 못함으로 직접 시계에 깜빡 점등과 진동하는 장치를 만들어 달았던 것이었다.
이제야 누나가 잠자리에서 일어난 모양이었다. 철민은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는 미소를 짓자 여자아이도 방긋 웃으며 철민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향해 걸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여자아이는 여전히 철민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손을 크게 저으며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잘 있어! 다음에 또 만나자.”
그 여자아이도 앉은 채로 철민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