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다른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이 일만은 안 되겠는데…….’라고 하면서 너와의 관계에 선을 그으려 하면 너는 거부당했다고 느끼며 좌절한다. 너는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너는 늘 끝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기를 갈망한다. 이제부터는 사랑에도 선을 긋도록 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달라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고, 더 달라면 더 주곤 하다가 결국에는 지쳐서 끝내는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하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헨리 J.M. 뉴엔 지음>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하는 방식이 일방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면이 많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도 무조건 주려고만 한다. 결국 자식은 뭐든지 부모는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만다. 이것이 사랑인 줄로만 안다. 늙어선 줄 수 없을 때에 부모는 절망하거나 역행역할을 하고 만다.
진정한 사랑은 한계를 통해 성숙한 사랑에서 얻어진다. 자기 한계를 알 때에 타인에 대한 바른 관계와 존중과 감사함을 갖게 된다. 솟는 샘이 그 맛을 잃지 않는 이유는 한계를 지키기 때문이다. 사랑도 역시 자기 한계를 지킬 때에 사랑의 가치와 존중이 유지된다. 부모 사랑도, 연인 사랑도, 우정도 모두 한계를 지켜질 때에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참다운 사랑은 자기 한계를 지킬 때만 사랑을 오래 지킬 수 있으며,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TV에서 사랑의 드라마를 볼 때나 연애소설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움을 마음이 솟는다. 사랑이란 달콤한 사탕과 같다고 말하는 대사도 처음엔 그렇지 하게 된다. 또는 대중가요에서는 사랑은 이별의 정거장이라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그러면서 미성년의 시대에는 노래를 즐겨 불렀었다. 마치 사랑의 한계를 무의식 중에 인정하는 것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한편, 부모로부터 편애적인 사랑, 일방적인 사랑, 또는 정통적인 사랑 - 가문(家門), 문화(文化), 전통(傳統) 등으로 유전된 사랑의 성격으로 이루어진 사랑으로써, 나라마다 민족마다 유래된 텃밭에서 싹이 자란 사랑의 색깔들이다.
한편, 남녀의 애정(愛情) - 본성적 사랑, 본능적 사랑, 문화적 사랑, 유행적 사랑 등으로 각인(刻印)된 사랑의 스토리를 답습하거나 모방하려는 데에서 상호사랑을 확인하려고 하거나 인정해 주려는 사랑의 색깔들이다.
이러한 사랑의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적인 사랑이라고들 합창하듯이 외치지만, 사실은 인간중심의 사상에서 각인되고 의식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사랑의 스토리는 변화고 변해간다.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동물에게는 사랑이란 단어가 합당치 못하다. 그러나 동물도 암컷과 수컷 간에 교미의 방식들이 동물마다 다르지만 원리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만은 인지와 행동에 있어서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결국은 일반적으로 ‘사랑’이라는 인간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랑의 스토리 중에서도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모성애(母性愛)만은 하늘이 준 사랑의 그림자인 것이다. 이 사랑만은 한결같고, 불변의 사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연인(戀人)의 사랑(愛), 우정(友情)의 사랑, 애국(愛國)의 사랑, 민족애(民族愛) 등은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의 사랑들은 폭탄 같은 모습을 보이고, 한계를 느끼게 되고 만다. 그러니 이러한 사랑에 대해 확인하는 방법도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심장이 뛴다고 하거나, 얼굴이 빨개졌다거나, 미칠 것 같다거나, 그 외에도 동물적, 본능적 행동이 마치 사랑의 행위라고 받아들인다. 더욱 웃기는 것은 사랑에 대해서 궁합으로, 심리분석으로, 전생에서, 천생연분이니 하는 것으로 미화하여 타당성과 긍정적으로, 즉 물리적으로 엮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는 재미 삼아하면서…….)
그러할지라도, 인간의 사랑 이야기는 항상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비록 참 사랑을 알지 못하여도 천성이 진실한 사람들에게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참 사랑으로 가게 될 수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하다고 본다. 그렇게 때문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 비결이 바로 본문에서 말한, ‘사랑의 한계’란 비결에 있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은 과장이나 포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미약한 사랑일지라도 사랑함으로써 참 사랑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게 된다. 그러나 거짓된 인간은 최대한 사랑을 포장하고 과장하여서 목적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동일한 인간, 거짓된 인간들끼리 서로 사랑의 싸움을 하며, 때로는 인격적이다가 짐승이었다가 하며 수많은 고통과 눈물로 살아가게 될 뿐이다.
그럼, 사랑의 한계란 무엇일까? 인간관계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하는 선을 파괴하지 않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그분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사랑은 공짜가 아니다. 사랑은 물건이 아니다. 사랑은 지배가 아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유일하게도 인간세계에서만 사랑이 존재한다. 사랑은 인간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도 역시 사랑이 존재한다.
그래서 창조자 하나님은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했다. 여자(창조자의 특별한 선물)를 창조하여 둘이 함께 함으로써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에서 참사랑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 부모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연인과 우정에서도 참사랑을 하게 된다.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를지로다.(창세기 2:24)
*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2:5)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Because God is love.](요일4:7,8)
* 그걸 아니나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고,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했지요. 그래서 남녀를 창조하사 서로 사랑함을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