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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생각하는 갈대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19. 생각하는 갈대


파스칼은 23세 때에 「최초의 회심(回心)」을 경험했는데, 그 무렵 수학이나 물리학 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허약했던 그는 그 후 의사의 권고를 쫓아 사교계에 드나들면서 「기분 전환」을 꾀하여 건강을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이윽고 학문의 기쁨도, 풍부한 교양도, 인간과의 사교의 즐거움도 자기에게는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하고 다시 신앙의 길을 추구하여, 31세이던 1654년 11월 23일 밤에 「결정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파스칼이 하느님의 은총에 충만된 완전히 성서적・복음적인 회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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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이어서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변증(辨證)하는 「기독교 변증론」의 집필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다. 그는 집필 중이던 원고를 완성할 수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도 없는 채로 수년 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져야 했다.

이 원고가 친구들에 의해서 일단 정리되어 출판된 것이 유명한 파스칼의 『팡세』(Pansee), 즉 명상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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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명한 말 「생각하는 갈대」를 들어 본다. 우선 격조 높은 그의 문장을 읽어 보기로 하자.


「인간은 한 줄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짓눌러 찌그러뜨리는 데는 온 우주가 무장할 것까지도 없다. 한 줄기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찌그러뜨리더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그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런 일들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필자로 하여금 『성서』의 말씀 몇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서」 10장 28절의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은 4절 뒤에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라는 말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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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받아 「마태오 복음서」 12장 8~2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보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에게 내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으리니,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 없으리라.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의 승리로 이끌어 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즉 구주 메시아의 예언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그 성취라고 하는 중요한 기술에 「갈대」가 등장한다. 옛날에 문어체로 된 『성서』에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라고 씌어 있었는데, 이 한마디는 단 한 번을 듣기만 해도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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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대」라는) 말이 『성서』에서 이처럼 여러 번, 그리스도에 대한 증요한 기술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파스칼이, 인간의 나약함의 상징으로서 「갈대」를 택하시고 「상한 갈대를 꺾는 일」이 없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암시했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과학자와 기독교/와다나베 마사오 글/오진곤・손영수 역/ 전파과학사>


파스칼의 『팡세』는 대학시절에 읽었었던 때에도 너무나 감회가 깊었었다. 마치 명상의 글을 읽는 심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일반 소설처럼 쭉 읽어 내릴 수가 없었다.

다시 칠순을 넘겨서 마사오 선생의 글로 접하게 되니, 비록 번역된 글이지만 그때처럼 가슴이 떨린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하려는 충동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파스칼 하면 「팡세」가 떠오르면서 그를 사상가나 명상가로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파스칼의 유명한 것 중에 하나는 최초로 계산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수학자이며, 물리학자라는 사실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런 그는 왜 일찍 세상을 떠났을까? 그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옛 어느 글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일찍 데려가신다는 문구가 생각난다. 성경 속에서도 천년을 산다는 노아홍수 이전의 사람들 중에 ‘에녹’이라는 분은 60세에 무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백이십 년의 수명이 된 현실에서 39세로 인생을 마감한 파스칼과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장수를 고대하며, 장수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모를 지위가 높으신 분에게 항상 장수하시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단명한 사람에게는 불쌍하다, 전생에 뭔 죄가 많았었나, 얼마나 못됐으면 하는 등 말들이 많다. 물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에서 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온 우주가 갈대를 꺾는데 무장할 필요조차 없듯이라고 하는데서 우주는 무가치함을 말했고, 갈대인 인간에게는 고귀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 -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 - 들은 자신의 강함을 짐승의 탈로써 나타내려고 했었다. 지금도 역시 무지한 인간들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며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면 과시한다. 그러할지라도 온 우주가 무가치함처럼, 슈퍼맨이든, 천하장사든, 풀 한 포기에도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데도 아직도 많은 무지한 인간들은 이미 사라진 영웅들을 숭배하며 모방을 하려고 애를 쓴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처럼, 육체를 죽이고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두려워 말라고 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다시 말하면, 파스칼이 말했듯이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만이 존귀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도의 문명 속에 사는 인간들에게는 생각하는 갈대가 아닌, 가축처럼 길들여진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생각하는 갈대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인간, 건강한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즉 진리를 깨달은 자만이 자유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파스칼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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