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원스
어느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였다. 원이는 하교 길에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원이는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으며 달려와 노량진역에서 겨우 전철을 탔다. 전철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이는 겨우 자리를 잡아 앉았다. 전철은 서울역에서 인천으로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원이의 집은 오류동이었다. 전철 창문에는 빗줄기가 주르륵 사선을 그리며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그러는 모습을 원이는 한없이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창밖으로는 가로수들이 지나가고 집들이 지나가고 사람들도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던 원이는 어릴 적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열 시간을 달리는 완행열차에서 기차의 불빛으로 보았던 농촌 길이 떠올랐다.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곤하게 잠들고 있을 때에 원이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는 한없이 달리는 기찻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완행열차의 창문에 이마를 맞대고 있는 어린 원이는 열차의 불빛으로 어둠 속에 보이는 기찻길 옆에 수풀 속에서 작은 요정들이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모습을 보았었다. 이 수풀에서 저 수풀로 작은 난쟁이들이 무엇인가 보따리를 지고 옮기는 모습을 원이는 끝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원이는 달리는 전철 속에서 어린 시절에 열차 속에 있었던 때처럼 전철의 창문 밖을 바라보며 사념에 잠겼다. 달리는 전철이 다음 역에 멈추면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하였다. 원이는 사람들이 전철에서 내리고 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내려야 할 생각이 없는지 전철은 원이가 내려야 할 오류동역을 지나쳐 갔다. 차창 밖에는 넓은 들판이 지나가고 논밭들이 지나가고 간간히 집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하였다. 원이는 전철 안을 살폈다.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전철 안에는 한적해졌다. 어느덧 전철은 종착역인 인천 역에 도착을 했다. 원이는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내리는 것을 바라보더니 어슬렁어슬렁 자리에서 일어나 전철에서 내렸다. 원이는 주변을 둘러보고 인천 역에서 출발하는 승차구역 쪽으로 걸어갔다. 원이는 다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텅 빈 전철 안으로 들어갔다. 원이가 탄 전철은 서울역 행 전철이었다.
원이는 창가 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전철에는 의자들이 전철이 달리는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전철 안에 사람들이 하나 둘 타기 시작하더니 어느 정도 사람들이 채워졌다. 서울행 전철은 곧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전철의 출입문이 닫히고 서서히 전철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이는 무릎에 놓은 책가방에 팔을 고이고 손으로 턱을 받친 채로 달리는 전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창 밖에는 가로수와 전봇대들이 쏜살같이 뒤로 지나갔다. 그리고 들판과 집들은 서서히 지나갔다. 달리던 전철에 있는 사람들은 전철이 멈출 때마다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타고 하였다. 원이는 반복되는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철로 길을 달리는 전철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래,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철로 길을 달리고 있는 삶의 공간 속에 있는 거야. 시간 위에 달리는 삶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지.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얼마 살지 않고 사라지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한참을 달리다가 사라지는 거야.”
원이는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도 결국 사념에 빠지고 말았다. 전철에는 또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어떤 사람은 내리려다 말고 다시 탔다. 그러자 원이는 번뜩 생각이 났다.
“그렇지, 불교에서는 윤회라는 것이 있다고 했지. 우주에는 한정된 혼(魂)들이 있고, 그 혼들이 떠돌다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른 인간으로 태어나고 한다지. 윤회에는 업보라는 것이 있다는 거였지. 타인에게 해를 끼친 인간은 다음 생애에서 되받게 된다고 하지. 그래서 전생과 현생을 논하지. 그런데 그런 이치를 어떻게 알았을까?”
원이는 전철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다. 갑자기 원이는 관상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원이는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음, 그래~ 인간은 본질을 갖고 태어난 거였어. 선하게 보이는 얼굴, 악하게 보이는 얼굴, 누가 그랬던가? 아브라함 링컨이었나? 아인슈타인이었나? 인간은 사십 대에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했지. 그러면 인간은 사십에 이르면 자존 관념이 완성된다는 것이 아닐까?”
전철은 여전히 서울 역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덜커덩덜커덩 한강 다리를 지나가는 전철을 원이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한강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신속하게 달리는 전철에서 원이는 또 생각에 몰입했다.
“그렇지, 우주의 시간? 강물의 흐름과 전철의 속도와 같은 것이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있구나? 영화를 볼 때에 재밌을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지, 재미가 없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그게 시간의 관념인 거구나. 그러나 결국은 큰 차이가 없는 셈이지. 만일 시간의 차이가 있다면 혼란이 올 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혼란? 타임머신처럼 말이지. 그래서 외계인이라는 상상의 인물로 모순을 해결하려고 하지. 외계인?”
어느덧 전철은 서울 역에 도착을 했다. 원이가 내려야 할 역은 아니었다. 다시 갈아타야만 했다. 염치없는 원이는 역시 서울 역에 내렸지만 다시 돌아갈 전철을 타려고 이동을 했다. 그때에 어느 여인이 원이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원이는 무심코 여인이 주는 쪽지를 받았다. 그리고는 되돌아갈 승차장으로 원이는 갔다. 아직 타고 갈 전철이 오지 않아서 원이는 벤치에 앉았다. 원이는 손에 있는 쪽지를 바라보더니 내용을 읽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오늘도 하루를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시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겠지요? 그렇게 살아가시는 날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십 년, 어떤 사람은 사십 년, 어떤 사람은 오십 년, 어떤 사람은 칠십 년, 팔십 년이겠지요? 당신은 얼마나 사실 것 같습니까? 그리고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복음 14:6)
그 아버지가 계신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교회로 가시면 자세히 가르쳐 드립니다.”
원이는 읽고 또 읽었다. 인천 행 전철이 왔다가 갔는데도 원이는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꼼짝을 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음, 생각이 나는 군~ 어릴 적에 반달 교회에서 들은 것이 생각이 나는구나. 천당과 지옥! 그랬지.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였지. 썬다싱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은 후에 끔찍한 꿈을 꾼 적이 있었지. 그곳은 지옥이었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직도 생생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진리인 거지. 그러나 심판이 있다고 그랬어. 불교에서는 염라대왕이 심판을 하고 지옥과 극락으로 갈라진다고 했다. 기독교에서는 창조주가 심판을 하고 천당과 지옥으로 갈라진다고 했어. 진리는 하나인가 둘인가? 석가는 죽었고 예수는 부활했다. 그럼 석가는 어디에 있나? 극락? 예수는 부활했으니……. 그래~ 교회에서는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고 했어.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어.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어. 그 아버지에게로 간다는 것이네. 그곳이 천당인 것이군. 내일이 일요일이구나. 한번 교회를 다시 가 보아야겠다.”
원이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머리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때에 인천 행 전철이 와 대기하고 있었다. 원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철을 탔다. 역시 원이는 차창 쪽에 앉았다. 늘 하는 버릇대로 원이는 다시 차창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빠졌다. 전철은 한강 다리를 지나 오류동 역에 도착을 했다. 원이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류동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