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 할아버지의 동화 편]
가을도 서서히 물러서려나보다 나뭇가지 끝에는 나뭇잎들이 하나 둘 달려 있으면서 찬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도 맴 할아버지는 두터운 털조끼를 입은 채로 느티나무 아래에 정자에 앉아 계셨다. 이미 느티나무 가지에는 잎들이 다 떨어져서 앙상하기만 한데도 반갑다고 느티나무 가지들이 살랑살랑 흔들어주고 있다.
이제는 날씨도 차서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보기 힘들다. 맴 할아버지의 동네친구들은 대부분 하늘나라에 가고 없다. 홀로 남은 맴 할아버지는 느티나무 정자에 나와 앉아있는 일이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맴 할아버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주변에 잔가지들을 주서서는 작은 깡통 속에 넣고는 주머니에서 신문지 조각을 하나 꺼내어 담뱃대의 불로 붙여서는 깡통 속에 넣었다. 작은 깡통이라고 해도 그 크기는 작은 물 항아리 정도는 되었다.
깡통 속에 잔 나무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담뱃대에서 담배연기를 한 모금 피어내고 있는 맴 할아버지는 멀리서 동찬이와 친구들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맴 할아버지는 갑자기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그렇지, 네놈들이 안 오고 배겨~”
“저기 맴 할아버지가 혼자 계신다. 춥지 않으신가?”
“우리 가보자~ 또 뭔 얘기 해줄지 모르잖아!”
맴 할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간 동찬이와 친구들은 먼저 인사를 했다.
“맴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추운 날씨에 왜 혼자 계셔요?”
“응? 너희들이 올 것 같더라고…….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네? 우리가 올 줄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지나가려던 참이었는데요!”
“허허,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그럼 쓰나?”
“할아버지! 오늘은 무슨 얘기해주실 거예요?”
“자네들 말이야. 내년에는 몇 살 되지?”
“할아버지~ 자네가 뭐예요? 내년에 열다섯 되거든요.”
“그래? 열다섯이라……. 옛날에는 애 아빠가 되었지.”
“옛날이라면, 조선시대예요?”
“그럼, 이젠 세상을 알 때가 됐구나!”
“할아버지보다는 더 잘 알아요. 신문이나 TV로만 아시죠? 우리는 인터넷으로 전 세계를 다 들여다볼 수가 있어요.”
“허허, 그러겠지. 하지만 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지.”
“그럼 어떻게 아는데요?”
“오늘 내가 한 가지 예를 이야기해 주지.”
“네!”
동찬이와 친구들은 맴 할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갔다. 맴 할아버지는 깡통 속에 잔가지들을 더 넣으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주 깊은 구덩이 속에는 세 사람의 남자들이 있었다. 구덩이가 얼마나 깊은가 하면 말이다, 이 세 남자가 위를 쳐다보니 주먹만 한 구멍이 보일 뿐이야. 그리고 이 세 남자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쳐도, 그 소리는 구멍 밖에까지 울려 퍼지지 못하는 거야.”
“왜요?”
“그 구덩이 속에는 습기가 많고 해서 소리는 위로 퍼져갈 힘이 안 되지. 중력이 소리를 꽉 잡아당기고 있거든.”
“와우~ 그래요? 소리도 무게가 있나 봐요?”
“그렇지, 소리는 공기의 매질을 통해서 이동하거든, 소리는 그 매질을 끌어올릴 힘이 적은 거지.”
“와~ 신기하다. 다음은 요.”
“구덩이 속에 있는 세 남자들은 하루, 일주, 한 달을 지나면서, 겨우 살아남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지. 다행히도 그 구덩이에는 약간의 물이 흐르고 있었고, 또 빛이 구덩이 속 깊이 들어오지 못하니 다양한 이끼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개구리와 바퀴와 귀뚜라미, 지렁이 그리고 도롱뇽 등이 살고 있었지. 그래서 세 남자는 이런 것이라도 먹으며 살아 버티고 있었던 거지.”
“인간은 생존하는 능력이 있네요. 대단해요.”
“그래, 아마도, 모든 생물들 중에 인간만큼이나 생존능력이 있는 것은 없지. 그러니 인류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거지.”
“맞아요. 다른 생물들 중에는 멸종되었거나 사라진 것들이 많지요. 그래서 진화론에서는 적자생존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면서 생존을 위해 진화할 수밖에 없다고들 해요.”
“음……. 제법이구나.”
“다 맴 할아버지의 가르침이죠. 헤헤헤.”
“그래그래, 그래서 말이다. 구덩이 속에 생존해 있는 세 남자들은 어떨 것 같겠니?”
“글쎄요?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겠죠!”
“물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는 가지만, 좀 다른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지.”
“어떻게요?”
“그러니깐, 한 남자는 구덩이 속에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하려고 하지. 그러나 다른 남자 한 명은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남자의 도움을 받으며 생존하기는 하지만, 늘 불만불평이 끝이 없지. 그러니깐,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해?’, ‘이게 사람 사는 거야?’ 그러면서도 더 악착같이 생존하려고 먹을 음식을 남몰래 숨겨놓고 그러지.”
“나쁜 놈이네요.”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니? 요즘 세상이 그렇지 않니? 그래서 세상은 시끄러운 거야.”
“......”
“그리고 또 한 남자가 있었지. 그 남자는 무엇을 했을까?”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려고 생각했겠죠!”
“그렇지, 그 남자는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지. 그렇다고 같이 있는 두 남자랑 함께 살면서 그들이 먹는 것을 같이 먹고 있었지.”
“그럼,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한다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거잖아요?”
“자네들도 그리 생각하나? 세상을 잘 보라! 열심히 사는 사람과 매사에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만 있을까?”
“뭔가를 만들어내 해결해 가는 리더가 있는 거지요.”
“그렇지, 그래서 그 한 남자는 구덩이 속에 여기저기를 살피기를 하루, 일주, 한 달 그리고 일 년이 흘러간 거지.”
“꽤 오래 사네요?”
“누구나 죽지 않으려면 살게 되는 거지. 그 남자는 튼튼한 나뭇가지 두 개를 발견하게 되었지. 물속에 오래 있어선지 생각보다 단단하였단다.”
“썩지 않고요?”
“그걸 모르는구나, 나무가 썩는 이유는 온도변화에 있는 거란다. 더웠다 추웠다 말랐다 젖었다 하면서 나무는 썩어가는 거란다.”
“와~ 맴 할아버지는 아는 것도 많으셔요.”
“그렇게 보여? 사람이 덤벙되면 진짜는 안 보이고 가짜만 보이지.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참(眞)이 보인단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말이다. 자연을 자기의 생각대로 보고 이해하지만 특별한 사람은 자연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알게 되지.”
“어떤 경우인데요?”
“봐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뱀의 생각을 말이다. 여자는 이용당한 거지. 창조자는 선악의 열매를 먹지 말라 했잖니?”
“네.”
“이미 선악의 열매는 그 뜻을 보여주고 있었던 거지. 그러나 아담은 계속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여자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종종 말했던 거야. 그러니깐 사탄은 아담과 여자가 서로 대화하는 것을 엿들었지.”
“그래요?”
“그럼, 그러니깐 아담은 여자랑 자주 선악의 나무 곁에 왔었던 거지. 맛이 어떨지 궁금했겠지. 에덴동산의 모든 열매는 다 먹어봤잖니?”
“네.”
“그러니깐 사탄은 아담과 여자가 선악의 나무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 그래서 뱀을 이용했던 거지.”
“그러네요. 우연히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이런 아담의 행동을 창조자는 알고 있었지만, 지켜본 거지.”
“왜요?”
“그 이유는 말이다. 사람을 만들 때부터 있었지. 창조자는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 거야.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의지를 주신 거지.”
“자유의지네요.”
“그렇지, 그래서 아담의 후예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세상을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했던 거지.”
“그래서 세상은 어지러운 세상이 된 거네요.”
“그럼, 그러나 세 번째 남자처럼 자신에게 있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실마리를 찾아가려고 하는 인간도 많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그 남자? 그 두 개의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자신의 옷을 찢어서 끈으로 만들었지. 그리고는 구덩이 속에는 흙으로 되어 있었거든, 그래서 그 나무 하나를 흙에 박고 다른 나무를 좀 더 위에 막고, 그 나무에 끈을 묶어 몸을 의지하고 아래에 나무를 뽑아 다시 위에 박고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 거지. 물론 하루 만에 올라갈 수는 없었지. 그는 흙벽에 붙어있는 이끼를 먹으면서 하루 이틀, 일주 그렇게 조금씩 두 나무막대기를 번갈아 박으면서 말이야.”
“그래서요?”
“결국 그 남자는 구덩이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지.”
“그럼 나머지 두 남자는 어떻게 되죠?”
“원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인간은 심성이 선하지. 구덩이 밖으로 나온 그 남자는 사람들을 불러온 거지. 이 구덩이 속에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 구덩이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구할 방법을 생각해 냈지.”
“그래서 구했어요?”
“물론 구했지. 하지만 구덩이 안에 있는 두 남자에게는 심한 논쟁이 일어났지. 구덩이를 빠져나간 남자에 대해서 말이다.”
“왜요?”
“불평불만 하는 남자는 빠져나간 남자를 믿지 못한 거지. 너무 억울하고 분한 거지. 자기만 빠져나갔다고 말이야.”
“그럼 한 남자는요?”
“그 남자는 여기서도 살고 있는데, 구하려 오면 좋고 아니면 여기 살면 되잖아 하는 거였어.”
“역시~”
“그때에 구덩이 위에서 두레박이 내려오고 있는 걸 발견했어. 그런데 불평불만 하던 남자가 재빨리 그 두레박에 올라앉은 거야. 그리고 위로 올라갔지. 그러자 위에 있던 사람들이 물었어. 또 한 남자는 괜찮으냐고 말이다. 그런데 불평불만 하던 남자는 모르겠다고 말했어. 그래서 사람들이 구덩이 안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는 구덩이 밑에 까지 들려오지 않았던 거야. 그러자 사람들은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지. 홀로 구덩이에 남은 남자는 다시 두레박이 내려오지 않자. 빠져나갈 생각을 포기하고 구덩이 안에서 살아갈 생각에 빠져있었지.”
“그놈, 나쁜 놈이네요!”
“이제 알겠지? 불평불만 하는 인간은 두 마음을 품고 있지. 즉 교만과 탐욕이지.”
“그래서 구덩이에 남은 남자는 그냥 구덩이 속에 있는 거예요?”
“아니지, 첫 번째로 구덩이를 빠져나온 남자는 구덩이 속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남자는 어둠을 이용해서 혼자서 긴 밧줄로 두레박을 묶어 구덩이 속으로 넣었지. 그러자 구덩이 속에 있던 그 남자는 무엇인가 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두레박에 올라탔지. 그러자 첫 번째 남자는 두레박을 끌어올려서 그 남자를 구해준 거였지.”
“다행이네요. 그렇잖았으면 얼마나 외롭게 살다 죽었겠어요.”
“그래, 이제 뭔가 알겠니? 세상은 그런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하잖아요?”
“그러나 봐라! 첫 번째로 나온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세상은 어지럽고 시끄러워도 창조자는 결코 방치하지 않으셨지. 그 남자가 나올 수 있도록 의지를 주셨고, 그 남자는 그 의지를 잃지 않았고, 그뿐만 아니라 구덩이 벽을 흙으로 해있었고, 거기다 썩지 않은 튼튼한 나무막대기가 있었지.”
“그러네요! 모든 게 예정대로네요?”
“만일, 창조자가 인간처럼 부족한 자라면, 어찌 됐을까?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을 외면했을 거야.”
“왜요?”
“그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 거지. 하지만 창조자는 전지전능하신 거였어.”
“그럼, 이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이군요.”
“예정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아셨기에 상황을 풀어내도록 하신 거지. 예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로봇을 만들 때에 프로그램을 입력하듯이 한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요즘 떠드는 인공지능이 바로 그런 것이지.”
“와우! 맴 할아버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시는 것 같아요.”
“다는 아니지. 여기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야. 세상을 세밀히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지. 내 생각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되어가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지.”
“맴 할아버지 만세! 오늘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꽤 시간이 흘렀다 그지? 이제 더 추워지기 전에 일어나자!”
맴 할아버지는 동찬이와 친구들과 함께 마을로 가셨다.
『젊은 시절에 너는 네 창조자를 기억하여라.』(전도서12장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