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 할아버지의 동화 편]
늦은 가을날씨에 느티나무 정자 주변에는 이미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늘 계셔야 하는 맴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주말이면 할아버지들이 몇 분은 계셨을 텐데 말이다. 오직 가을햇살만이 느티나무 정자를 지키고 있었다.
느티나무 정자는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 때문에 정자가 생겨났고, 나그네들이 이곳에 오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었다. 이제는 노인들만이 쉬는 장소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유일하게 홀로 남으신 맴 할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몫까지 지키려는 심정으로 꼭 이 자리를 지켜 오셨던 것이었다.
멀리서 자전거 두 개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동찬이와 그의 친구 철수였다. 느티나무 정자에 다다른 동찬이는 친구 철수에게 말했다.
“맴 할아버지가 안 계시네? 웬일이지?”
“그러게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닐까?”
동찬이와 친구는 정자 주위를 자전거로 맴돌고 있었다. 그러자 소향이가 맴 할아버지랑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오빠~ 거기서 뭘 해? 왜 뱅뱅 돌아!”
“오, 소향이구나! 맴 할아버지랑 같이 오네?”
동찬이와 친구는 자전거를 멈추고는 한쪽에 세워두고 맴 할아버지 쪽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셔요? 여기 계셔야 하는데....... 이제 오셔요?”
“똥찬! 말이 많구나, 좀 늦을 수도 있지~ 소향이가 날 찾아왔어! 얼마나 기특하니? 똥찬이도 본받아~”
“소향아~ 오빠가 뭐 되니? 왜 갔어?”
“오빠~ 오늘이 할아버지 85세 되신 날이잖아! 어머니가 미역국을 드시게 하라고 했어. 그래서 간 거야.”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이셨어요? 죄송해요. 절 받으셔요.”
동찬이와 친구는 할아버지 앞에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했다. 맴 할아버지는 손을 저으시면서 사양을 하셨지만, 동찬이랑 친구는 다시 큰절을 올렸다.
“허허, 이런 두 번씩이나 절하다니……. 나 아직 건강해! 건강하지.”
동찬이와 친구 철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그리고 할아버지 옆에는 소향이 앉았다. 할아버지는 소향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고맙다고 하시었다.
“정말 미역국을 참 맛있게 먹었단다. 이렇게 홀로 사는 늙은이를 소향이 어머니가 챙겨주시니 감사하다고 꼭 전해다오.”
“네, 할아버지! 오래 사셔요.”
“네, 맴 할아버지! 오래 사셔야지요. 그래야 좋은 이야기도 듣잖아요.”
“그래, 그래, 오늘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까?”
“바다 이야기요?”
“그래, 바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지.”
“뭔데요?”
“갈매기지. 눈먼 갈매기에 대해서 말해줄까?”
“네, 눈먼 갈매기라니요?”
“그런 게 있어~ 갈매기처럼 눈이 좋은 새는 별로 없지. 바닷속을 훤히 보거든.”
“그래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거군요.”
“자, 들어봐~”
『바닷가에 갈매기 울음소리는 더욱 바다향기를 그리워하게 만들지. 떼 지어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는 더욱 힘차 하루를 알려준단다. 그런데 갈매기 무리 속에 어울리지 못하는 한 갈매기가 있었지. 그 갈매기는 사람들이 먹다 버리고 간 캔 속에서 무엇인가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단다.
그 갈매기는 눈먼 갈매기였어.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가자고 해도 눈먼 갈매기는 따라가지 않았지. 눈먼 갈매기는 친구들처럼 하늘을 날려고 하지 않았어.
바닷가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식찌꺼기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지. 그렇다고 항상 음식쓰레기 속에는 먹을 것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 그래서 눈먼 갈매기는 휴가철이 오면, 관광객들 사이로 돌아다니곤 했었단다. 그러면 어른이나 아이들이 반갑게 대해주고 먹을 것도 주고 해서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일부러 절룩거리며 다녔지. 그러면 불쌍하다고 더 많은 먹을 것을 주는 거야. 그러면서 눈먼 갈매기는 다른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며 바닷속에 물고기를 찾느라 애쓰는 것을 비웃었지.
“뭘 그리 고생을 하지~ 바보 같은 친구들이야. 여기 이렇게 사람들이 맛난 것들을 주잖아!”
“야~ 넌 어리석은 짓이야! 사람들이 언제나 네 곁에 있는 줄 아니? 지금은 휴가철이니깐 사람들이 몰려올 뿐이야~ 정신 차려!”
“자식~ 넌 예수님 말씀도 못 들었니?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고, 오늘의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해!”
“넌 어디서 그런 얘기 들었니?”
“바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봐~ 사람들이 왜 저렇게 잘 살겠니? 서로 베풀며 살잖아~ 봐! 내가 절룩거리며 걷잖아? 그럼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많이 준다.”
“조심해! 널 불쌍해선 줄 아니? 재밌어서 그런 거야! 봐라~ 이젠 사람들도 없잖아!”
“그래도 여기저기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들 속에 아직 먹을 것들이 많아~ 그건만 먹어도 배불러!”
“네가 사람들이 먹는 것을 많이 먹으니깐, 네 눈이 어두워지는 거잖아! 그렇잖아도 넌 우리보다 눈이 밝지 못한데 말이야.”
“그러니깐, 이렇게 사람들 속에 붙어살면 되지!”
눈먼 갈매기는 사람들이 준 것을 먹다 보니 몸이 친구들보다는 뚱뚱해졌다. 그래서 눈먼 갈매기는 자신의 몸집이 커진 걸 자랑하고 있었단다. 다른 갈매기들은 바닷속에 물고기를 잡고 먹으랴 몸이 날씬했었지.
이제 휴가철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어.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은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다 치워버렸지. 그러자 눈먼 갈매기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그것도 뒤뚱대며 바닷가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찾아다니고 있었단다.
어떤 때는 재수가 좋아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찌꺼기를 찾아내기도 했었지.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날도 많았지. 며칠을 굶고 헤맬 때도 많았지.
그럴 때마다 가장 친한 갈매기가 바다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를 물어다 눈먼 갈매기에게 주기도 했단다. 그런데 눈먼 갈매기는 친구 갈매기가 가져다준 물고기는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였지. 그래서 친구 갈매기가 가져다준 물고기를 안 먹을 때도 많았어.
이미 눈먼 갈매기는 사람들이 준 음식들에 물들어버린 거였지. 그래서 바닷가에 모래사장을 돌아다니며 모래를 뒤집고, 파도치는 바위틈새에 낀 음식찌꺼기를 찾아보며 그러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먼 갈매기의 몸에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지. 음식찌꺼기만 먹다 보니, 상한 음식도 먹고, 기생충들이 서식하는 음식도 먹고 그랬던 거야.
그래서 눈먼 갈매기는 몸이 말라가는데, 배만 불러오는 거였지. 눈먼 갈매기 뱃속에는 기생충들이 늘어나고 있었던 거였지. 그리고 눈도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갔어. 그런 눈먼 갈매기는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음식찌꺼기를 찾아다닐 수가 없게 되어 버렸어.
그렇잖아도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물고기를 잡는데 힘들었었는데, 이제는 안전히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 음식찌꺼기를 찾아다닐 수 없게 되었으니, 친구 갈매기들이 바닷물고기를 잡아다 주었지. 어떤 때는 눈먼 갈매기가 잘 먹지를 않아서 바닷가에 음식찌꺼기를 찾아서 눈먼 갈매기에게 갖다 주기도 했단다.
그러나 눈먼 갈매기는 점점 배가 불러오더니 어떤 것도 먹을 수가 없게 되어 결국에는 죽고 말았단다.」
“어때? 오늘 얘기는 심각하지? 갈매기나 사람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거란다. 명심해라!”
“네, 남의 도움만을 바라는 마음은 좋은 게 아니네요.”
“그럼, 그래서 하나님도 아담에게, ‘네가 수고하여야 식물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지. 그건 벌을 내린 게 아니란다. 환경을 말해준 거란다.”
“환경이요? 무슨 환경이에요?”
소향이 궁금하다는 듯이 할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는 소향의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시면서 말했다.
“에덴동산에서는 식물이 풍부하였지. 수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었지. 그러나 에덴동산을 떠난 후에는 수고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는 그런 환경이란 거지. 요즘은 먹을 게 너무 많지?”
“네, 어른들이 못 먹던 시절을 말하면, 이해가 안 됐어요. 폰으로 주문만 해도 신속하게 음식이 오는데 말이에요.”
“그럼, 북한 사람들에 대해 들어봤지? 굶어 죽었다는 얘기 말이다.”
“네, 왜 굶어 죽어요?”
“그래서 북한 땅에는 아니 산을 봐라~ 민둥산이잖니?”
“그러게요. 산에 나무들이 없어요? 나무를 심으면 될 텐데요.”
“나무뿐만 아니란다. 풀도 싹 쓰러 갔지. 풀뿌리라도 먹으려고 말이다.”
“정말 불상해요. 우리나라에서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안타까워요.”
“자자,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자! 너무 늦었구나. 날씨가 추워지는 것 같다. 소향아~ 우린 갈까?”
“네, 할아버지~ 오늘은 슬픈 이야기였어요.”
“그래, 다음엔 재밌는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자, 가자~”
맴 할아버지는 소향을 데리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동찬이와 친구 철수는 정자에 그대로 앉아서는 멍하니 걸어가시는 소향이와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 철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먼 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