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 할아버지의 동화 편]
“오 징글벨, 징글벨, 징글 올더웨이 …….”
12월에 겨울바람이 훈훈하다. 동찬이는 손에 종 하나를 들고 흔들며 마을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신바람에 노래를 부르며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며 느티나무 정자 쪽으로 오고 있었다.
느티나무 정자에 앉아서 땅에 지팡이를 곧추 세운채로 맴 할아버지는 동찬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맴 할아버지를 발견한 동찬이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을 허리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맴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
“똥찬이! 왜 그러고 서 있나?”
“안녕하셨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투 맴 할부지!”
“그래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똥찬~ 허리 뒤에 뭘 감췄지?”
“아무것도 아녀요~”
그때에 동찬일 발견한 칠석은 여동생과 함께 느티나무 정자 쪽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칠석이와 여동생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셔요? 할아버지. 메리 크리스마스 되셔요.”
“허허, 소향이도 오빠랑 같이 왔구나, 이리 와 앉아라!”
“할아버지~ 전 앉으라고 안 하셔요?”
“오, 허허, 똥찬이 심통 부리는구먼........ 언젠 앉으라고 해서 앉았냐?”
“또, 똥찬이라 불러요? 소향이가 웃잖아요!”
“똥찬이 어때서? 넌 소향이 있어서 그러지?”
“아네요, 듣기가 그렇잖아요?”
“듣기 좋기만 한데……. 소향아 그렇지?”
“네, 귀여워요.”
“거봐라~ 귀엽다 하잖니!”
“몰라요. 오늘은 뭔 얘기 해줄 거죠?”
“오늘은 소향이 오빠도 왔으니........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해줄까?”
“크리스마스 이야긴 재미없어요. 너무 많이 듣잖아요.”
“그래? 소향아, 오빠가 좋지?”
“네! 우리 오빠가 최고예요. 뭐든 들어줘요.”
“그렇구나! 오늘은 우리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마.”
“예? 우리 동네에서요?”
“우리 동네가 아니라 십리를 걸어가면 아리랑 고갯길이 있단다.”
“네, 아리랑 고갯길! 알아요.”
“그래? 너희들도 가보았니? 아리랑 고갯길 끝에 절이 하나 있단다.”
“알아요. 만법사.”
“가보았니?”
“네, 아빠랑 약수 뜨러 간 적이 있어요. 꽤 멀어요. 근처에 절이 있어요.”
“그래, 그 절이 바로 만법사란다. 그 절 아래에는 약수터가 있었지.”
“약수터로 가는 길에는 소나무들이 빽빽이 있었어요.”
“호~ 똥찬이 제법인데, 그 길을 아리랑 고개라고 한단다.”
“정말 힘들었어요.”
“소향아! 그곳에는 한 남매가 살고 있었단다. 그 이야기를 해주마.”
“네, 맴 할아버지~”
그리고는 소향은 맴 할아버지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맴 할아버지는 소향의 고운 손을 한번 잡아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아직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전이란다. 이것 우리가 사는 동네는 집들이 거의 없었고, 민둥산이라 할 정도였지. 그리고 저 아랫마을에는 전차가 들어오고 있었지. 전차의 종착점이지. 지금은 돈암동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되너미지’라고 불렀단다. 이곳으로 되놈이 넘어온다고 해서 되놈과 바위가 많다고 해서 암이 붙여져서 돈암(敦岩)이라 불러진 것이지.”
“아~ 그래서 돈암동이라 불렀네요.”
“그래, 칠석인 이해를 하는구나. 일제 초기에는 돈암리였다가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돈암정이라 불렀단다.”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허허, 똥찬이가 이걸 안다고? 뻥치는구나!”
“아니요. 돈암동이란 이름을 안다고요.”
동찬이는 맴 할아버지가 동무 칠석이를 칭찬하자. 좀 샘이 났다. 맴 할아버지는 소향에게 밍크를 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열어갔다.
“자,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그때에 돈암정까지 전차가 다녔지. 그러면서 돈암정 주변에는 부자들로 작은 마을을 이루어졌었지. 그러면서 곳곳에 초가집도 아닌 판잣집 같은 집들이 생겨났단다. 그때만 해도 이곳은 아늑하고 조용한 멋진 마을이었단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참 평온했었지. 아리랑 고갯길을 넘어 다니는 장사치들도 많았었지. 아리랑 고개에 이르면 장사치들은 꼭 만법사에 들려서는 시주를 하고 복을 빌고 했단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에 부잣집 마님들도 종종 찾아와 애한(哀恨)을 빌고 그랬단다.
그런데 그 만법사에 대웅전 벽에 불교 그림을 그려주는 화쟁이가 있었단다. 그 화쟁이는 절마다 찾아다니면서 벽화를 그려주며 절밥을 얻어먹고 살았었단다. 그 화쟁이에게는 열 살 된 아들이 있었지. 그의 아들도 화쟁이를 닮아서인지 그림을 제법 잘 그리고 손재주가 많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에 그 화쟁이의 아내가 딸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 그런데 그 딸아이를 위해 화쟁이는 절을 찾아오는 아낙네에게 젖동냥을 해서 딸을 키웠단다. 그렇게 키운 딸이 세 살이 되었을 때에 화쟁이는 한 스님을 통해 딸이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딸의 이름은 절에서 지어준 이름으로써 연시(蓮侍-연꽃을 모신다는 뜻)라 불렀단다. 그러나 화쟁이는 딸이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늘 마음에 그늘이 있었단다. 그는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었고, 그래서 더욱 딸을 사랑했었던 것이었지. 그런 사랑스러운 딸이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다는 것에 늘 마음이 아파했었단다. 그러자 그는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단다. 그래도 절밥을 얻어먹을 수 있어서 굶지는 않았지. 그래서 그들은 만법사 절 뒤 언덕 아래에 작은 초막을 짓고 살았단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연시의 오빠는 돈을 벌기 위해 경성(서울)에 있는 종로에서 구두 닦기로 집안 살림을 꾸려갈 수가 있었단다. 연시 오빠는 새벽이 되면 일찍 일어나 걸어서 아리랑 고갯길을 내려와 돈암정 전차 종점에서 전차를 타고는 경성의 종로에 나가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하였단다. 그렇게 해서 오후가 되어 어두워질 때에 종로에서 전차를 타고 돈암정 종착지에 내려서는 아리랑 고갯길을 걸어서 오르면 다시 만법사 뒤 언덕 아래로 와야 집에 도착을 하고 했었단다. 연시네 오빠는 하루 이틀 추우나 더우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단다.
한편 어린 연시는 절 아래 언덕 밑에 작은 초막집에 살지만, 가끔은 집을 나와서 더듬더듬 언덕을 기어 올라와 앉아서는 바람소리에 나뭇가지들이 우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새들과 벌레 소리를 듣기도 하며 해밝게 웃기도 했단다. 또는 절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절 냄새랑 사람들의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쁜 표정을 짓기도 했단다. 그러면 절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귀엽다고 먹을 것을 주거나 엽전을 주기도 했단다. 그러면 연시는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절을 하였단다.
그러던 어느 날, 12월이 다가오자 종로 길에는 크리스마스 노래와 예쁜 크리스마스추리장식들로 가득해 있었지. 그런 분위기에서 연시 오빠는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아주며 한 푼 두 푼 돈을 받았단다. 그 당시에는 구두 닦는 값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 손님이 주는 대로 받았단다. 가끔 손님이 뜸할 때에는 연시 오빠는 병상에 누워계시는 아버지와 연시를 생각하고 했단다. 종로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 손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들고 가는 모습을 연시 오빠는 넋을 잃은 채로 바라보고만 있었지. 이제 내일이 오면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가 되는 날이었단다.
연시 오빠는 절 옆에 살면서 부처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지만, 예수가 누구인지 잘 몰랐단다. 단지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단다. 그날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 기쁨을 나누는 거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시 오빠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과 서로 기쁨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연시 오빠는 조금 일찍 구두 닦는 일을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선물가게로 들어갔단다. 선물가게 안에는 각양각색의 선물들이 가득했었지. 연시 오빠는 놀라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몰라했단다. 연시오빠가 머뭇거리고 있자 가게주인이 다가와서 말했지.
“어이, 구두닦이! 뭘 찾아?”
“아~ 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네.”
“누구 한데 할 건데?”
“제 여동생에게 요.”
“그래, 여동생이라……. 이거 어때?”
선물가게 주인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인형을 건네주었다. 연시 오빠는 잠시 머뭇하다가 가게주인을 쳐다보았다.
“얼마예요?”
“응? 십 엔!”
“저~ 오 엔밖에 없는데요......”
“오 엔? 이 인형은 맘에 들어?”
“네, 하지만.......”
“좋아! 그럼 열흘 동안 내 구두를 닦아주겠니?”
“네! 그럼 오 엔이면 돼요?”
“그러지 뭐~ 자 받아!”
연시오빠는 너무나 기뻤다. 가게주인이 예쁘게 포장까지 해주었다. 연시오빠는 그것을 꼭 안고는 곧바로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았다. 오늘따라 전차가 느리게 가지 하면서 말이다.
집에 도착한 연시오빠는 선물을 몰래 감춰놓았다. 그리고 그날 밤에 자고 있는 연시의 머리맡에 선물을 놓았다.
다음날 아침,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연시는 눈을 뜨고 옆에 자고 있는 오빠를 쳐다보다가 머리맡에 선물을 발견하였다. 연시는 오빠를 깨웠다.
“오빠! 이거 뭐야? 누가 갖다 놨어?”
“응? 산타할아버지가 왔다 갔나 봐!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연시에게 선물을 주셨네!”
“산타할아버지가 누구야? 왜 선물을 줘?”
“그렇데, 오늘이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야. 그래서 착한 우리 연시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시는 거야.”
연시오빠는 여동생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산타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연시는 너무 기뻐서 선물을 급하게 뜯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인형이었다. 연시는 너무 좋아서 인형을 보고보고 또 보고 하면서 얼굴에 인형을 대고는 냄새도 맡았다.
“오빠! 이 사람은 누구야? 아기예수의 엄마야?”
“응, 아기예수 엄마야.”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참 좋겠다. 그렇지?”
연시오빠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여동생이 엄마를 그리워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옆에서 주무시던 연시아빠는 눈을 감은 채로 듣고만 계셨다. 연시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마리아 인형을 자세히 보고자 인형을 눈에 가까이 데고는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인형을 품에 꼭 안았다. 이제 연시는 자기 옆에 엄마가 있는 느낌을 느꼈던 것이었다. 이날에는 연시오빠도 여동생과 함께 놀아주었단다.」
“어때, 내일이 크리스마스 날이지? 서로 좋은 선물을 해라!”
“할아버지! 너무 슬퍼요.”
소향이는 맴 할아버지의 팔을 끌어안으며 울고 있었다. 맴 할아버지는 당황을 했다.
“거 봐요! 소향이가 울잖아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날인데 뭐예요?”
동찬이는 심통을 부리면서도 자신의 콧등을 쓱 팔소매로 닦았다. 칠석이도 눈물이 글썽한 채로 먼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맴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꺼내어 하나씩 나눠주었다.
“자자, 이거 받아! 메리 크리스마스 날에 착한 일을 해야 복 받는다. 알았지!”
그리시고는 맴 할아버지는 민망한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가셨다. 동찬이와 칠석이 그리고 여동생 소향은 맴 할아버지가 준 카드를 열어보았다. 할아버지가 직접 그리신 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