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1,2)
~~~~~~~~~~~~ Bible ~~~~~~~~~~~~~~
「같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셔서 죄의 고통을 멈춰버리게 한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써 고난을 당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고난을 멈추게 하신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다음 절에서, ‘이방인의 뜻을 쫓아 행한 것들’은 이제는 족하다는 말씀은 다시는 거론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너희가 이방인들이 행한 것들,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 등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씀이시다. 즉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정숙하게 살라는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이미 저질렀던 죄를 회개하였을 때에 그러한 것들은 다 소멸되고 더 이상은 그러한 죄로 인한 고난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늘 자신의 죄로 인해 두려워하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길을 가다가도 성황당에 가서 빌고, 돌부처에게도 빌고, 하물며 의미심장한 물체가 있으면 거기에다가도 빌고, 먼 길을 떠나면 무엇인가에 빌어야만 안심하는 그런 심성들이 바로 죄에 대한 고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두려움도 그치게 했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임아 그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기 때문에 늘 그 고난과 고통으로부터 자유 할 수가 없다. 오직 이를 믿는 그리스도인만이 자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상하게 여기며 이해하지 못하나,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 그들은 고난과 고통을 두려워하며 살까 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세상 사람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삶을 잘 알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 말씀/최희원 글>
기독교인이라면서,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얼마나 그리스도를 알고 있을까?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조금만이라도 깨달았다면,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내가 사춘기 시절에 가난에 대해 알지도 못하였을 때에 가난이 찾아왔다. 그것도 1년 반이란 세월을 말이다. 아니 그 후로는 늘 가난하게 살아온 것 같다. 그때에 내 소망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살도 시도해 보았고, 보수동 헌책방을 지나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죽음과 자살이란 단어가 있는 책제목만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이르는 병」, 「죄와 벌」, 「자살클럽」등의 책들을 정독하면서 위안을 받고 그랬었다. 나중에서야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 슬픔도 눈물도 없는 나라, 하늘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느 날 초등시절에 돈암동 사거리에 있었던 약국의 문에 붙어 있는 그림, 낭떠러지가 있는 길 중에 하나는 천국으로 가는 길에 신사와 길이 끊긴 다른 길로 가는 강도를 보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 후로는 성경의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어주었다. 대학시절에는 흥사단에서 자주 열리는 명사들의 강연을 열심히 들었었다. 특히 함석헌선생, 김동길선생 등 저명인사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조국과 민족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었다. 그리고 625 전쟁에 대해서 들었을 때에, 전쟁이 터진 직후에 미국의 트리 먼 대통령에게 전보를 친 빌리 그래이엄 목사의 간곡한 글에, ‘한국은 세계의 어느 것보다 기독교신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라면서 대통령님께 지혜를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린다고 한 말에 의해 한국전쟁에 즉각 참전하여 한국을 공산주의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에 와서 묵상을 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목사님은 가지셨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을 등지고 수도생활을 하라는 도를 닦는 진리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나침판, 등대 등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세상을 등지고, 외면하고 자신만이 복 받겠다고 하는 기복신앙을 추구하는 것일까? 세상의 부귀영화가 믿음의 가치를 의미하는 걸까?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간곡히 말하는 것이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갑옷은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가기 위한 준비해야 할 항목이 아닌가? 그러니 그리스도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라가 아니라, 온전히 알라는 뜻으로 같은 마음을 갑옷처럼 무장하라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해야,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을까? 먼저 예수님이 가르친 말씀을 철저하게 세밀하게 하나하나 깊이 묵상하며 이해하며 깨달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전체의 말씀을 다 아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지 신학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성령이 진리를 깨우치시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에, 그때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경건한 삶을 살게 되고,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아보는 선한 삶을 살게 된다.
또한 같은 마음을 품을 때에 세상의 고난과 고통을 이해하고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고통 없이 살게 되는 복권과 같은 것이 아니라, 슈퍼맨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고통받는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우선 하나님 앞에서와 자신에게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도 정직한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진실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