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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 이웃을 사랑하라의 뜻

[自思考]

by trustwons

4. 네 이웃을 사랑하라의 뜻


「이웃을 사랑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미래사회는 세상을 배제하고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와 같은 방식의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세시대는 한 사회제도가 다른 사회제도를 점령하여 지배하는 시대였다고 볼 때에, 근대사회는 대립하면서 독립된 사회를 형성하면서 공존하는 시대였다고 보아진다.

특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냉전사회는 구조로써 공산사회와 민주사회가 큰 집단으로 세계사회를 이루었으며, 그 사이에 중립국가가 공존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이념적 바탕을 둔 두 체제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냉전시대가 끝나고 정보화시대와 열린 국제사회로써 세계화시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 이상 고립사회로 놓아두지 않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각 국가들의 관계의 개선과 공존원리를 더욱 강화해 가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조직의 변화가 일고 있으며, 대기업이나 정부도 행정적인 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각 종교단체들도 변화를 위한 운동과 자체개편을 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계에서도 ‘기독교 사회’라는 명칭 아래에 교회와 교인들은 변화를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현 국가가 복지사회를 부르짖고,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기독교사회는 복지적인 선교를 추구해야 할 것이며, 교회(기독교사회)의 구조도 역시 복지를 바탕으로 한 교회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율법을 재해석하여야 하며, 십계명에 있는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말씀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뜻을 바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교회사회, 즉 기독교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네 이웃이란’ 기독교인을 칭하기도 하며, 한편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나타난 이웃은 유대인을 벗어난 사마리아인까지도 이웃으로 본 것처럼 현대에 와서는 네 이웃이란 기독교인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도 포함하여 네 이웃이라는 뜻을 포함하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이 시대적인 예언을 담고 있다는 것에 놀라운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끼리라는 이기적인 집단행위는 일반사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정보화시대와 개방화를 부추기는 세계화를 인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혁명은 더욱 이러한 제도를 구체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열린 개방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세계의 동태를 시차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공감과 분노를 한 지역에 극한 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국가 안에서 서로가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너무나 밀접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버리지 못한다.

그 예로써, 노조문제와 교육문제를 말할 수가 있겠다. 노조관계를 개선하기를 바라는 기업은 많이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개선하느냐 하는 데 있어서는 쉽지 않게 되었다.

입시문제도 역시 대학위주 일수도 없고, 입시생만을 위한 대책도 다양한 조건들이 얽혀있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방과 양약 간의 논쟁도 한의사나 약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만의 문제인양 떠들고 있다. 하지만 엄격히 따진다면 시민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들끼리 논쟁하는 동안 희생되는 것은 시민들인 것이다.

이처럼 사회 각 층의 이권문제가 이제는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은 서서히 인식하고 있다.

역시 종교문제도 이제는 종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모든 종교와 학문과 경제, 그리고 교육과 일반 사회제도도 개방되어 있으며,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이웃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에 개를 한 마리 기른다고 할 때에도 이웃과 전혀 무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는 식의 인식은 깨져버렸다. 그만큼 이웃과 밀접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사회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만이 기독교인이 변화하는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까지 말씀하셨던 것이다.

원수란 가까이는 형제 속에 있을 수 있고, 밖으로는 이웃한 세상 사람들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제뿐만 아니라 세상에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뜻은 기독교사회 안팎으로 관심을 가지고 복음적인 삶을 살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적 명령은 온 세계민족이 구원의 대상이지 제한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데 있지, 선별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악하든 선하든 사람이 판단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오직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진리를 증거 하는 것이지, 비복음적인 삶을 살면서 진리를 증거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바리새인과 같이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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