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思考]
두 사람의 랍비가 뜻하지 않게 같은 땅을 사려고 땅 주인을 찾게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의 랍비는 땅 주인에게 물었다.
“땅을 내놓으셨다 하기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오 그래요! 그럼 저와 함께 땅을 보러 가실까요?”
땅 주인은 그 랍비를 안내했다.
“어떻습니까?”
“예, 마음에 아주 드는군요. 그래, 땅값은 얼마면 될까요?””
“그러니까 평당.......”
이때에 다른 랍비 한 사람이 오더니,
“자, 여기 있어요. 땅값!”
“아니 이럴 수가~ 내가 흥정을 하고 있는데........ 여 여보세요!”
“나 말인가요?”
“당신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문제인데요?”
“어떤 사람이 과자를 사려고 과자가게에 갔습니다. 그런데 과자가게에는 먼저 온 사람이 과자를 사려고 과자 품질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이 살피고 있던 과자를 냉큼 집어 들고는 주인에게 값을 치렀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예의를 모르는 사람입니까?”
“그야, 말할 것도 없이 나중에 온 사람이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지요.”
“이것 보시오! 당신이 지금 땅을 산 것은 나중에 와서 과자를 가로챈 사람이나 같습니다. 당신이 산 이 땅을 내가 먼저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땅은 이미 계약을 해 버렸으니 어떡합니까?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당신이 내게 그 땅을 파는 것입니다.”
“그, 그건 좀 곤란합니다. 내가 산 땅을 금방 다시 팔아버린다는 것은 남들이 볼 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거 참!”
“그것보다는 내가 산 이 땅을 당신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선물이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선물로.......”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무엇 때문에 이 땅을 그냥 선물로 받는단 말입니까? 난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 일을 어떡하지요? 음......... 별 수 없지! 이 땅을 학교에 기부하기로 하겠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두 랍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상거래에도 예의가 있다는 것과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곳에는 예의를 중요시할 때에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동물들이 사는 곳에서도 동물들의 질서가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서 된 것 아닙니다. 동물을 창조하신 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언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창조자의 뜻이 없겠습니까?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동물처럼 생명들에는 상생(相生)의 뜻이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에게는 상생(相生)과 공존(共存)의 뜻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