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생각]
어쩌면 어른은 없는 게 아닐까. 이 생각이 떠오른 지점에서부터 나이가 많이 든 지금에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래 자리 잡을 생각이다. 그 기반에는 많은 어른들이 지나갔고 거기서 배울 점 하나씩 마음에 담아둔 터였다. 이 생각은 언젠가 형태를 바꾸거나 발전하거나 혹은 기억에서 흩어질 수도 있을까.
SNS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부모님, 그러니까 어른들의 사정으로 헤어지게 된 아이가 세상이 여러 번 변하는 동안 엄마를 보지 못하다가 만나는 영상이었다. 장성한 이가 엄마를 향해 달리고 엄마가 그를 향해 달렸다. 큰 키와 어린아이의 테라고는 보이지 않는 긴 다리의 청년이 크게 소리쳤다.
"엄마!"
그런데 그 말에서 저렇게 큰 사람이 아주아주 작은 어린아이로 보이게 되는 건 왜일까. 엄마는 나이가 지긋하고 흰머리가 샐 정도로 나이를 드셨지만 젊은 여성처럼 보였다. 서로를 마주한 둘은 서로를 붙잡아 안으며 엉엉 울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 굉장히 짧지만 생각은 길어지는 그런 영상이었다.
모두가 어려 보이는 인상을 받은 건 그들의 시간은 헤어짐으로부터 지금 다시 흐르기 시작해서였나 보다. 그 시절에서 그 추억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하기만 하다가 만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 그런 거였다. 너무나 극적이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게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에 매번 놀라게 된다.
'아이, 그건 드라마지.'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수 있었던 것도 기술의 발전이 지금과 같지 않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덕이었는데 이따금씩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을 이런 사연 하나로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늘 그렇듯 반대편에서 이야기가 들린다. 누구나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집집마다 스토리 하나씩은 있다며 콕 집어 말하는 말. 누군가의 상황, 환경을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의 문장이다. 하지만 누가 몰라서 이런 영상을 개개인의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보고 있겠나. 알지만 말하지 않고 전하지 않았던 이야기 꾸러미를 열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보고 있지 않나. 대화를 나눠보려는 이들 곁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요즘에 나오는 심리상담 프로그램들만 봐도 모두 놀랄 사연이지만 그 사연들 하나하나 보다 보면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어른은 없는 게 아닐까.
아이가 문제라 나온 사연은 사실 부모의 역할이 문제였고 부모의 문제는 또 그들의 부모에게서 영향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이래서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세대를 거쳐도 걸러지지 않는 것들은 늘 존재했다. 이 혼잡한 사연들 속에서 조금 엉뚱한 생각 한 가지를 몇 번이고 되뇐다.
정의 내리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어른과 아이의 영역을 나눠둔 탓에, 성장함과 동시에 어른스러움을 꼭꼭 씹어 몸에 흡수되기도 전에 아이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면 어린 어른이 된 아이는 걸맞지 않게 또 어른 흉내를 낸다. 세상물정도 모르겠는데 어른인 양 구는 것부터 연기를 배운다. 그래서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주름이 깊게 파인 어른부터 이제 갓 성인이 되어 들떠 보이는 사람들까지 아주 어린 때를 상상하곤 한다.
상상은 그 나름의 흥미로움을 도출하지만 다시 그들을 보면 너무 훌쩍 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