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생각]
사람이 먹고살려고 하는 행동은 한 번에 완벽하지가 않아서 많은 준비와 소비가 생겨난다. 그게 자신이 되었든 물건이 되었든 간에 일회성에 가깝게 사용되다 버려진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기를 원하는 니즈에도 그런 것들이 묻어있다. 동시에 아이러니함을 가진다면 그런 것들이 있다. 살려면 필요한 것 곁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함께 한다. 순간, 찰나에 차별화라는 단어에는 수많은 쓰레기들이 나온다. 한 순간을 위한 포장 같은 것들이 그렇다. 받을 때는 기쁘지만 풀고 나면 필요 없어지는 것들이 잔뜩 생겨난다.
이런 것들은 특정 분야의 직종이나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무언가를 사용한다면 버려지는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기에 딱 잘라 누구 탓을 할 수 없다.
가끔은 창작을 한다는 게 무섭다. 어릴 적에 아빠의 큰 손을 붙잡고 길을 걷다가, 처마에 달린 고드름을 보며 해준 말이 생각난다.
"옛날에는 저 고드름을 똑 따다가 먹을 수 있었어.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아빠의 눈은 고드름에서 추억을 되짚어가고 있었다. 그 얼굴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은 나는 가끔 두렵다. 내가 알던 풍경이 옅어질 것이라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나온 환경 관련 전문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현재 지구 온도는 산업시대로부터 1.15도가 올랐고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덜 배출하면 더디게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분의 말에는 막을 수 없다는 현실상황이 담겨있어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는 캠페인이나 환경을 위한 활동들이 잔뜩 있는데 그럼에도 나아질 수가 없다는 사실에 약간은 허무함을 느끼면서. 그러는 너는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떠듬떠듬 이야기한다면, 내가 환경을 위해서 했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것들 중에 몇 가지는 그 안에 속하는 활동으로 볼 수 있겠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도시락과 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옷을 아주 오랫동안 입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한 명의 개인이라 그런지 글로 써 봐도 한 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주 빈약하고 얇다.
내가 즐겨보는 유튜버가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텀블러를 챙겨가서 음료를 받았다. 친구들은 그런 유튜버를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유튜버의 반응은 신선했다.
"지구는 안 좋아해. 지구는 감동 안 해. 지구한테 어차피 나는 똑같은 바퀴벌레 인간인 걸."
표현이 강렬한 만큼 깊이 와닿았다. 솔직히 그럴 수도 있겠다. 포스터에 그려 넣는 지구가 행복해하는 이미지는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쓰레기는 매일 나오고 있다. 그게 모이고 모여 섬을 이뤘다는 이야기나 소가 옷을 먹는다는 영상을 보면 그렇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나의 어떤 결심에 따른 행동이 결국 쓰레기로 끝나버린다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나. 나는 과연 어떤 결심을 한 것이고 어떤 행동을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다시 불러올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사랑한 것들의 이면을 나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
흔히 하는 착각은 미래세대에게만 닥칠 일일뿐 내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지식인들은 꼬집는다. 우리가 여름철이 되면 늘 입에 붙여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날이야.'
너무 무서운 말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변화하고 있다. 유난히 깨끗하고 높은 하늘이 매력적인 가을의 냄새를 흠뻑 마시지 못할 수도 있고 벚꽃이 빠르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언제부터는 김치를 먹기 어려울 것이고 스콜성 강수량에 의해 벼가 쌀이 되기가 어려울 수 있단다. 한국인은 밥심인데. 식사 끝에 디저트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고 그 밑에 누룽지까지 싹 먹어야 좋은 식사라고 할 수 있는데 벌써부터 큰일이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표어는 이거일지 모른다.
"네가 덜 굶어봤구나. 자꾸 그런 식이면 밥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