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설늙은이] 곰탱이와 여우
기억나는 어릴 때부터 나는 곰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태어나기를 느리고 천천히 하는 아이였다. 뭐든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미덕인 한국에서 느릿느릿한 것은 상당히 알맞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천성이 그러한 걸 어떻게 하겠나, 내 딴에는 이게 빠른 건데.
"아유, 요 곰탱이!"
곰탱이라는 별명도 듣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되기 마련이니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별명은 형태부터 송두리째 변했다.
"이 여우! 제가 저래봬도 여우라니까?"
엄마는 언니와 동생 앞에서 내가 한 어떤 영민한 행동을 시작으로 이후부터는 나를 여우라 불렀다. 곰탱이에서 여우라고 불러도 별명에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연민과 슬픔과 애정이 덕지덕지 붙은 애칭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의 말투와 묻어 나오는 감정 그리고 표정과 몸짓 그 모든 게 애정이었다.
학교의 경제적 지원을 통해 첫 해외를 가려고 의지를 다질 때 나는 습관적으로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첫 해외를 데려다 줄 저 비행기를 타보겠다는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했다. 찍은 사진 안에 담긴 비행기를 보고 마음도 정신도 열의와 투지로 감쌌다. 엄마의 말은 꼭 그 마음과 닮아있었다. 흔히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속설같이 계속 곰탱이라고 부른 것이 병을 늦게 알아채게 한 근원적 원인 중 하나인 것은 아닌지 엄마의 염려가 담겨있었다.
'내가 곰탱이라고 부른 것이 저 애가 곰탱이가 된 게 아닐까. 그래서 병도 늦게 알아채게 된 게 아닐까.'
그러자 엄마는 나를 곰탱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여우라 불렀다. 바꿔 부른다고 해서 금방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꾸준히 불러댔다.
"엄마, 여우라고 부르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지? 곰탱이 말고 여우라고 부르는 거 말이야."
엄마는 내 물음에 내 예상에 맞는 답변을 줬다.
"응, 혹시나 그래서 그랬던 건가 싶어서 그랬어. 네가 너 스스로를 늦게 알아챈 게 그런 이유일까 봐."
몸속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예상으로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엄마의 말과 온도로 모든 걸 온전히 깨달았다. 사실 예상이라고 하기보다 너무 명확한 것이었음에도 굳이 물어본 건 엄마가 애쓰는 게 너무 느껴져서였다. 난 천성이 곰탱이가 맞는데 그걸 거슬러 올라가 여우라 부르는 건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고 매끄럽지 않은 것이었다. 어딘가 후회가 묻어나는 데 애써 감추고 그저 살다가 깨우친 내 행동 하나를 인지시키기 위해 부각하려 애쓰는 모습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펑펑 난다. 엄마는 별 것까지 다 자기 탓을 하고 그러나 싶고 그렇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곰탱이도 좋고 여우도 좋다. 다만, 그때처럼 늦게 알아차리는 건 안된다는 마음이 들어 이후부터는 몸 상태를 살폈다. 이 말은 운동을 해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허가가 떨어진 후에 운동을 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늘은 어디가 결린다거나 아픈지를 인지하려고 애쓰는 과정이었다. 감각을 느끼는 건 마치 무딜 때로 무뎌진 칼을 갈아내는 것과 비슷했다. 그간 신경 끄고 살았던 것에 관심을 쏟고 혹여나 바로 나을 것 같지 않다면 그 길로 병원에서 침치료를 받던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행동으로 이끌어 냈다.
작은 병이어도 병이고 오래된 병이면 만성적이라는 단어가 붙는 병이기에 깨닫고 행동해도 열이 났던 날도 있고 오래가는 병도 있었다. 병에 걸리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기에 내 나름의 노력을 들여가며 애썼지만 몇 번이나 덜컥 병에 걸렸다. 그럼에도 한 가지 뿌듯했던 점은 이제는 이전보다는 빨리 알아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겠지만 오늘 내 몸 어디가 불편하고 아픈 감각이 느껴지는지 애써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버틸만하기에 버티고 업무와 별개로 큰 일임에도 그마저도 인지하는 게 늦다. 버틸만하기에 버티다 보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다. 내게 있어 알아차리는 게 늦어진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건강을 잃으면 내가 하는 일도 찾아온 기회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기도 하지만 제일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제일 무서운 점은 내가 알았던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린다. 내가 좋아했던 것도 열정을 불태웠던 것도 내게 있었던 가치의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무의미, 무감각, 무기력, 무가치처럼 온통 텅 빈 감각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