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설늙은이] 소수점 꼬리가 긴 인생
그렇다고 그것들에 그렇게 메여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졸업을 했기에 그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사회가 주는 미션에 응하고 도전해야 하는 삶에 단 하나의 의문도 없이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몸이 유독 아팠어도 이상한 통증들이 나타나다가 어느새 주기적으로 찾아와도 그건 그 순간, 찰나의 것이라고 무심하게 굴었다.
내 마음에 단 한 칸도 나에게 줄 수 없는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애석하지만 통증이라는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한 몸의 반응 정도의 것이었다. 물론 아플 때는 온 고통을 다 느껴야 했고 그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펑펑 울기도 했다.
"엄마, 나 과제해야 하는 데에에."
약을 먹고 한 숨자고 일어나 앉아 컴퓨터를 켜고 과제를 이어나갔다. 내가 아파도 해야 하는 일은 내가 일어나서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그렇게 악을 썼다.
아픈걸 아무도 모르게 한 졸업을 하던 그때에도 나는 병원을 주기적으로 들락날락하며 병원을 다녀왔다는 진단서를 받아 제출하는 것도 많았다. 물론 병원 진단서는 간단한 것들 위주였 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이어질 때마다 편도가 부어오르고 열이 펄펄 났기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링거를 맞고 진단서를 받아 제출했다. 진단서에는 간단하고 가벼운 한 줄, 대략 10마디에서 15마디를 넘기지 않는 단어가 적혀 있었기에 일반적으로 아주 잠깐 아픈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내가 아픈 진짜 이유를 설명해 줄 병원의 이름이 적힌 진단서는 낼 수 없었다. 이 정도의 일이야 집 앞의 병원에서도 해결할 수 있고 아픈 사람이라는 점을 들키기 싫었던 마음이 너무 컸다. 이 개인적인 것 중에서도 개인적인 것들로 더 나아갈 수 없는 완강한 벽을 마주한 내가 싫었다. 이미 몸 상태로 인해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는 낙인이 찍힌 경험이 있었기에 차선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에 시간을 쏟아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약도 졸업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회적 알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 나이를 딱딱 지정해 두던데 왜 이렇게 쉽지 않은지 내 삶은 애매하고 소수점 꼬리가 너무 길었다. 그러면 소수점을 버림 하거나 올림 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건 수학 과목이 아니라 내 인생이었고 그렇게 잘라먹을 수 있으면 모두가 편집을 했을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생은 해결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넉넉히 필요한 것과 금방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후자는 몇 없었다. 내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바꾸는 정도가 금방 바꿀 수 있는 영역에 속했다. 알고 있었지만 이를 인정하는 게 어려웠던 건 20대 초부터 30살이 되기까지 고단했던 내 몸과 정신으로 인해 부정을 쏟아내고 싶었다. 소위 그럴 여력이라는 힘을 소진하다 못해 마이너스를 찍은 인내심, 긍정적인 마음 등등 좋은 모든 것들이 힘을 쓸 수 없었다.
"뭘 인정하라는 거야. 인정하세요? 이 말은 마치 흑백논리 같이 압박감이 있어서 인정할 게 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냥 내 인생에 존재한다, 있다 정도면 충분한 걸 가지고 개인적인 영역마저 인정하라는 말을 붙이라니 저 단어 너무 싫다."
온통 사회에서 말하는 무언의 압박에만 다 가져다 써버리고 정작 내게 쓸 분량은 남겨 두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고장 나버렸다. 그것도 내가 모르는 사이 천천히 나름의 신호들을 보내오면서 끝끝내 퍼져버렸다.
사회가 말하는 바람직한 사회적 인간상, 인생에서 만난 멋진 어른들과 그렇지 못한 어른들을 비교해 가며 이상적인 인간이자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던 나는 사회로 나가 아주 제대로 넘어져버렸다. 먹는 약은 점점 줄어들어가기 시작했으나 또 다른 지독한 것들이 나를 찾아왔다.